글로벌 와인시장 갈수록 커져 ‘노블 그레입스’ 6종에서 20종으로

포도 품종은 전세계에 수만 종류가 넘는다. 와인의 발생지인 지중해와 흑해 주변에만 5,000종이 있다고 하고, 그중에서 유럽이 원산지인 와인 포도품종(vitis vinifera)은 대략 750여종을 헤아린다. 

이렇게 많은 포도 품종 가운데 전세계 와인산지에서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품종을 ‘노블 그레입스’(noble grapes)라고 한다. ‘고귀한 품종’이란 뜻의 노블 그레입스는 가장 우수한 품질의 와인을 만드는 가장 인지도가 높은 품종으로, 어느 와인산지에 갖다 심어도 고유한 품종의 맛을 나타내는 한편 산지마다 다른 테루아의 특성을 반영하는 포도 품종을 말한다.

노블 그레입스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적포도주 3종(카버네 소비뇽, 멀로, 피노누아), 백포도주 3종(샤도네, 소비뇽 블랑, 리즐링)의 모두 프랑스가 원산지인 6개 품종을 꼽았다. 그러나 갈수록 숫자가 늘어나 지금은 노블 그레입스라는 카테고리보다는 국제 품종이란 뜻의 ‘인터내셔널 버라이어티’(international variety)라는 카테고리 안에 18~20개 품종을 포함시키고 있다. 그만큼 전 세계적으로 와인의 대중적인 보급이 늘어났고, 인기 품종의 다양성도 확장됐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지난 10년 사이 우리가 마시는 와인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해졌는지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오리지널 노블 그레입스 6개 품종에 더하여 인터내셔널 버라이어티의 범주에 넣고 있는 와인 품종은 화이트 5종(슈넹 블랑, 게부르츠트라미너, 뮈스카, 피노 그리(지오), 세미용)과 레드 9종(시라, 카버네 프랑, 진판델, 가메이, 그르나슈, 무르베드르, 템프라니요, 산지오베제, 네비올로)이다. 모두 더하면 20개 품종이고, 원산지가 프랑스를 넘어서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의 품종들이 포함된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모두 중요한 품종이고, 오늘날 세계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와인들인 만큼 당연히 ‘고귀한 품종’의 식구에 포함돼야 할 것이다.

영향력 있는 와인전문가 캐런 맥네일은 국제 품종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중요한 9개 품종을 따로 ‘클래식 버라이어티’라는 범주에 넣고 있다. 카버네 소비뇽, 멀로, 피노 누아, 시라, 샤도네, 슈넹 블랑, 리즐링, 소비뇽 블랑, 세미용이 그들이다. 모두 프랑스가 원산지로서 오랜 세월 프리미엄 퀄리티 와인의 명성과 전통을 지켜온 품종들이다.   

한편 이런 국제 품종들에 대한 우려와 비난이 업계에서 심심찮게 제기되곤 한다. 이런 유명 품종들이 와인 양조산업을 장악하고 와인의 글로벌화가 이루어지면서 각 지역 고유의 토종 품종들이 밀려나거나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예로 20세기 후반에 세계적으로 샤도네 붐이 일었을 때 신세계의 수많은 포도원과 와이너리들이 샤도네를 더 많이 심기 위해 다른 품종의 포도나무들을 뽑아버린 일이 있었다. 신세계 뿐 아니라 오랜 와인 전통을 가진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도 많은 양조업자들이 고대로부터 재배해온 토종 품종인 네그로아마로, 프리미티보, 그르나슈, 마타로 등의 포도밭을 갈아엎고 샤도네를 심었다. 

지금은 샤도네가 문제가 아니라 10여개 인기 품종들에 편중돼있는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국제 품종들이 세계 와인산지를 식민지화하고 사람들의 입맛조차 국제화한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다. 위에 열거한 20개 품종 외에도 말벡, 프티 베르도, 프티 시라, 타나트, 피노 뫼니에, 카르메네르, 피노 블랑, 비오니에, 루산, 마르산 등등 맛있는 와인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와인리스트를 보면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품종들 투성이이고, 하나씩 맛볼 때마다 새롭고 특별한 맛에 놀라게 된다. 자본주의 세상의 끝에서 동네 상점들이 모두 사라지고 글로벌 거대기업만이 남는 것처럼 와인세계도 획일화 대형화되는 것 같아 자못 안타깝다.
글 : 정숙희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