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캔팅 얼마나 오래 해야 될까?

와인 디캔팅(decanting)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병에 든 와인을 좀 더 큰 유리 용기에 옮겨 담음으로써 와인이 충분히 숨 쉬게 하고(breathing) 공기접촉을 시켜서(aerating) 거친 맛을 없애고 부드럽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10년 이상 오래 된 레드 와인의 경우 침전물이 생겼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미리 제거하기 위해 디캔팅하기도 한다. 
 

와인 역사가 짧은 미국에서는 오래된 와인을 마실 기회가 많지 않으므로 어린 와인을 빨리 숙성시키는 용도로 디캔터를 사용하는 일이 훨씬 많다. 병 속에 갇혀있던 와인을 밑이 넓은 디캔터에 쏟아 부으면 와인이 한꺼번에 산소와 충분히 접촉하면서 거친 향과 맛을 방출시켜 숙성한 효과를 내게 된다. 따라서 맛이 거친 싸구려 와인일수록 에어레이팅의 효과를 더 많이 볼 수 있다.
 

디캔팅은 주로 레드 와인을 대상으로 하지만 화이트 와인도 디캔팅 하면 맛이 더 좋아질 수 있다. 진하고 풍부한 맛을 가진 캘리포니아 샤도네의 경우 디캔팅 하고나면 가라앉아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여러 이유로 일부 와인 전문가들은 디캔팅의 생활화를 권장하고 있다. 오래됐거나 값비싼 와인만을 위한 특별한 의식이 아니라 매일 마시는 에브리데이 와인도 디캔터에 따라 마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디캔팅 한 와인은 남았어도 보관할 수 없다는 점을 참고해야 한다. 보관해도 안 될 것은 없지만 맛이 완전히 플랫 해질 것이다. 
 

그러면 디캔팅은 얼마나 오래하는 것이 좋을까? 명확한 시간 규정은 없지만 태닌 성분이 강한 무거운 와인일수록 1시간 이상 하는 것이 좋고, 가벼운 와인은 디캔터에 따른 다음 금방 마셔도 꽤 부드러워진 것을 느낄 수 있다. 디캔터에 따르고 나서 15~20분이 지나면 레드와인 병을 처음 열었을 때 흔히 맡을 수 있는 상한 계란, 방귀, 고무탄내 같은 좋지 않은 냄새가 날아가 버리고, 1시간 정도 되면 태닌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한다.
 

거의 모든 레드 와인은 디캔팅의 혜택을 볼 수 있다. 가볍고 영한 와인(피노 누아, 가메이, 츠바이겔트, 스키야바 등)은 20~30분, 미디엄 바디 와인(카버네 프랑, 그르나슈, 멀로, 말벡, 바베라, 템프라니요 등)은 30~60분, 풀바디 와인(카버네 소비뇽, 네비올로, 프티 시라, 무르베드르, 타나트 등)은 60분 이상 하는 것이 좋다. 
 

화이트 와인과 로제의 경우 굳이 디캔팅을 할 필요는 없다. 소비뇽 블랑처럼 싱그런 과일향이 나는 와인은 디캔팅 하면 섬세한 아로마를 잃어버릴 우려가 있다. 그러나 병을 열었을 때 과일향보다 불유쾌한 냄새가 먼저 맡아질 경우 15분만 디캔팅을 하면 나쁜 냄새는 사라지고 과일향이 살아나기도 한다.
 

아주 드물게 샴페인이나 스파클링 와인도 디캔팅하는 일이 있다. 작은 샴페인하우스에서 나온 발포성 와인은 때로 리덕션(reduction)이라고 하는 큼큼한 냄새를 동반하는 일이 잦다. 이럴 때 스파클링 와인 용 디캔터(폭이 좁은 암포라 모양)에 한번 옮겨주면 버블은 좀 잃게 되지만 맛과 향이 좋아진다.  
 

디캔팅 해서는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아주 오래된 레드 와인은 병을 열자마자 급속하게 산화되어 간신히 지키고 있던 맛을 다 놓아버릴 우려가 있다. 20~30년쯤 된 와인이라면 코르크를 조심스럽게 열어서 우선 맛을 보고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맛이 괜찮으면 다시 코르크로 막아두었다가 병째로 서브하고, 맛의 균형이 좋지 않으면 30분마다 맛을 보면서 디캔팅 할지를 결정한다. 가능하면 미리 와이너리로 연락해 지침을 받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글 :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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