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minate Pitcher 류현진

2000년 시즌 중반 LA 다저스 ‘코리안 특급’ 박찬호를 취재할 때였다. 스포츠 신문 특파원들끼리 원정 길에 모여 승승장구하고 있었던 박찬호를 자연스럽게 화제에 올렸다. 

이 때 주제가 ‘Dominate Pitcher(상대를 압도하는 투수)’ 여부였다. 특파원들은 당시 강속구의 박찬호가 우수한 투수임은 분명하지만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그렉 매덕스처럼 상대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다고 결론냈다. 2000시즌 226이닝을 던져 18승10패 방어율 3.27 삼진 217 볼넷 124개를 기록했다. 메이저리그 입문 후 최고 시즌이었다.
 

류현진과 박찬호는 스타일이 다르다. 일반 야구팬들은 “박찬호, 류현진 둘 가운데 누가 더 뛰어나느냐”고 자주 묻는다. 활동 시기가 다르고 스타일이 달라 같은 잣대로 비교할 수는 없다. 박찬호는 파워피처였고, 현 LA 다저스 류현진은 피네스(finesse) 피처에 가깝다. 류현진의 삼진 갯수를 보면 파워피처와 피네스 피처의 중간급 정도로 볼 수도 있다. 다만, 박찬호는 대한민국이 배출한 최고 강속구 투수였다. 아쉬웠다면 관전자들은 늘 불안했다는 점이다. 류현진 경기는 편안하다. 제구력 때문이다. 

올 류현진 등판 때 TV와 라디오 캐스터, 해설자들의 입에 자주 오르는 게 Dominate라는 단어다. 마운드에서 상대를 지배하고 압도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심지어 “류현진의 경기를 지켜보는 게 즐겁다”며 극찬하고 있다. 실제 기록이 이 단어를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 5일까지 12경기에 등판해 메이저리그 다승(9승) 방어율(1.35), , 삼진-볼넷 비율(14.20) 부문에서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이닝당 안타와 볼넷 허용 WHIP(0.81)은 2위다. 최근들어 중요하게 판단하는 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 WAR도 3.3으로  NL 1위다. MLB 전체로는 3위다. 어떤 해외파 투수도 이루지 못한 시즌 중반의 행보다. 

반환점을 돌려면 아직도 멀었다. 반환점을 돌기도 전에 10승은 무난하다. 지난해 시즌을 마치고 국내 기자회견에서 “2019시즌 목표를 20승”이라고 했을 때 전문가들 입장에서는 ‘장난치나’라는 생각이었는데  현실 가능하게 됐다.  

‘도미네이트 투수’로 평가받으려면 승수는 물론이고 투구내용이 중요하다. 4월8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에서 2회 물러난 뒤 10일자 부상자명단에 올라 다른 팀의 에이스급 선발에 비해 2경기 정도 뒤져 있다. 사타구니 부상 예방 차원에서 내려온 세인트루이스전을 제외하면 4월20일 밀워키 브루어스전 5.2이닝이 최단 이닝이다. 선발 12경기에서 2실점 이상을 한 게임이 없다. 5월7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 완봉승을 포함해 무실점 선발 경기가 모두 5차례다. 4월26일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전부터 고공비행이다. 80이닝 투구에 삼진 71개다. 볼넷을 내준 경기는 5차례(1개씩)에 불과하다. 5월30일 류현진과 마무리 켄지 잰슨에게 합작 2-0 영패를 당했던 뉴욕 메츠의 미키 캘러웨이 감독은 “왼손 매덕스다”며 제구력에 감탄했다.  

MLB 중계 때 자주 언급되는 단어가 ‘Dominate와 ‘Intimidate’다. 컨트롤의 마법사로 통했던 명예의 전당 회원 그렉 매덕스는 전성기 시절 Dominate Pitcher였다. 좌완 랜디 존슨은 타자에게 겁을 주고 윽박지르는 스타일로 ‘Intimidate Pitcher’라고 보면 된다. 좌타자들은 존슨에게 철저히 농락당했다. 전 필라델피아 필리스 좌타자 존 크룩은 1993년 올스타게임에서 존슨의 위협구 후 바깥쪽 멀리 빠지는 볼에 엉덩이를 뺀 채 헛스윙해 팬들에게 웃음을 안긴 적이 있다. 존슨은 좌타자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류현진은 현재 도미네이트 피처다. 현재의 전반기 페이스는 전문가들이 자주 언급하는 ‘사이영 어워드 타입’ 시즌이다. 다저스의 초강세에는 마운드에 류현진이 사이영 타입 시즌을 꾸려가고 있고 공격에서는 코디 벨린저가 MVP 타입으로 성적을 이끌고 있다. 지난달 31일 경기 후 메츠의 캘러웨이 감독은 “류현진 피칭은 정리(sequence)를 할 수 없다”며 허를 찌르는 완급 조절과 볼배합에 혀를 내둘렀다. 9승을 거둔 원동력은 바로 캘러웨이 감독의 말에 답이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한 시즌내내 마운드를 지배할 수 있느냐 여부다. MLB 사상 한 시즌을 가장 도미네이트하게 운영했던 투수로 1968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우완 봅 깁슨이 꼽힌다. 명예의 전당 회원인 깁슨은 이 해 304이닝을 던져 22승9패 방어율 1.12를 기록했다. 완봉승도 13차례 삼진 368개로 사이영상과 MVP를 수상했다. 깁슨의 도미네이트한 시즌으로 MLB는 1969년부터 마운드의 높이를 낮췄다. 

류현진은 그동안 해외파들이 해보지 못했고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올스타게임의 스타팅 피처로 거론된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올 전반기 류현진에게 야구는 너무 쉬워 보인다. 

 

글 문상열 라디오서울 스포츠 해설위원
moonsy10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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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상열 라디오서울 스포츠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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