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라이벌전이 NBA를 바꿨다

1979년 3월26일 대학농구 NCAA 토너먼트 결승전은 AFKN(주한미군방송)을 통해 한국으로도 중계됐다.  AFKN 덕분에 40년 전에도 미국에서 벌어지는 스포츠 빅이벤트는 시청이 가능했다. 요즘은 전파가 달라져 일반인은 AFKN을 시청할 수 없다. 그러나 방송사들이 워낙 많이 생겨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이벤트들을 안방에서 볼 수 있는 시대다. 

유타의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열린 결승전은 빅10 컨퍼런스 미시건 스테이트 스파르탄스와 미주리 밸리 컨퍼런스의 인디애나 스테이트 시커모어스의 대결이었다. 개인적으로 인디애나 스테이트를 응원했다. 래리 버드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이 때까지 33승 무패를 달리고 있어 무패 우승의 기록을 기대했다. 하지만 버드에 의존하는 인디애나 스테이트는 어빈 ‘매직’ 존슨의 미시건 스테이트에 74-65로 패했다. 매직 존슨의 본명은 어빈 존슨 주니어다. 

미시건 스테이트는 매직 존슨을 비롯해 다양한 공격 루트와 빠른 템포의 공수 전환으로 고군분투하는 버드의 인디애나 스테이트를 압도했다. 미시건 스테이트의 NCAA 토너먼트 첫 우승이었다. 인디애나 스테이트는 버드와 함께 한 결승전이 대학의 유일한 파이널 포 및 결승 진출이다. 최근에는 토너먼트 진출도 어렵다. 1979년 버드 이후 딱 3차례 진출했다. 

올해로 미시건 스테이트-인디애나 스테이트 결승전은 40주년을 맞았다. 이 경기는 미국 농구사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NCAA 토너먼트와 NBA 지형을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40년 전 두 대학의 결승전은 대학농구와 NBA를 포함해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TV를 보유한 가구 38%가 시청했다. 이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고 전설로 남아 있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6차례 우승 때의 결승전도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 

팬들의 흥미를 끌 수 있었던 요인은 다분했다. 미시건 스테이트의 포인트가드 매직 존슨 vs 인디애나 스테이트 포워드 래리 버드의 흑백 대결은 팬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무패 행진 팀의 우승을 기원하는 순수 팬들까지 가세했다. 

드라마틱했던 결승전의 두 주인공은 1979년 나란히 NBA에 진출했다. 매직은 서부 명문 LA 레이커스로, 래리는 동부 명문 보스턴 셀틱스 저지를 입었다. 시나리오를 이렇게 만들기도 힘들다. NBA에게는 행운이었다. 매직은 1979년 드래프트 전체 1번으로 레이커스에 지명됐다. 래리는 원래 1978년 드래프트 전체 6번으로 셀틱스에 뽑혔다. 그러나 지명에도 불구하고 셀틱스로 곧바로 가지 않고 4학년을 마치면서 팀을 결승전까지 올려 놓은 것이다. 

NBA는 매직과 래리가 양대 명문 구단에 둥지를 틀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종전까지 NBA는 4대 메이저 종목 가운데 최하위였다. 코트에서 툭하면 난투극을 일삼았고 선수들의 약물 복용은 쉼없이 터져 나왔다. 이 때까지 방송국은 NBA 파이널을 라이브로 중계하지 않았다. 코트에서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스포츠에서 라이벌은 항상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극적 요소를 갖춘 두 라이벌이 리그 전체의 인기를 끌어 올린 경우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1970년대 인기 상종가를 쳤던 복싱은 헤비급의 무하마드 알리-조 프레이저의 라이벌전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것으로 만족했다. 

바닥을 쳤던 NBA는 흑백 대결 구도가 이어지면서 엘리트 리그로 변모했다. 이어 5년 후 노스캐롤라이나를 NCAA 토너먼트 챔피언으로 이끈 훗날의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가세하면서 글로벌화를 이루게 된다. 1991년부터 6차례 NBA 우승을 이끈 조던은 NBA를 세계화하고 농구의 아이콘이 됐다.
 

매직과 래리의 라이벌전이 흥미진진했던 요인 가운데 하나가 흑백 대결이면서 가정 형편이 판이하게 달랐던 것을 빼놓을 수가 없다. 보통 흑인 선수들은 싱글 맘에 불우하고 뛰어난 운동 신경의 소유자로 자리매김되는 게 흔하다.

매직은 정상적인 가정에서 성장했다. 부친은 제네널모터스의 기술자였다. 하지만 래리는 인디애나 주의 인구 1,800여명의 작은 도시 프렌치릭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였고 권총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 래리가 보비 나이트 감독이 이끄는 농구 명문 인디애나 대학에 리쿠르트가 됐음에도 1학년 때 중도 포기를 하고 전학을 간 이유도 성장 과정과 무관치않다. 인디애나 대학은 학교의 규모면에서도 인디애나 스테이트와 큰 차이가 있다. 

1980년에서 1990년까지 레이커스와 셀틱스의 라이벌전은 명승부 그자체였다. 이 기간 동안 매직의 레이커스 5회, 래리의 셀틱스 3회 우승을 이뤘다. 레이커스와 셀틱스는 미국 스포츠 결승전에서 무려 최다 12차례 맞붙은 팀이다. 레이커스는 셀틱스만 만나면 작아졌다. 처음으로 셀틱스를 꺾은 게 매직이 가세한 1984년이었다. 매직과 래리 두 라이벌은 NBA를 부흥시킨 전설의 인물이 됐다. 


 

글 문상열
라디오서울 스포츠 해설위원
moonsy10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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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상열 라디오서울 스포츠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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