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마’로 아카데미 3관왕을 받은 알폰소 쿠아론


어릴 적 과거에 대한 기억은 색깔이 흑백인가 아니면 총 천연색인가. 멕시코 감독 알폰소 쿠아론의 소년 시절에 대한 기억은 물결치는 흑백이다. 그 흑백이 알록달록한 총천연색보다 오히려 더 아름답다. 비평가들의 절찬을 받은 ‘로마’(Roma)는 1970년대 멕시코시티의 중산층 사람들이 사는 동네 로마에서 소년 시절을 보내며 성장한 쿠아론 감독의 추억담이다. 
 

쿠아론과의 인터뷰가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호텔에서 있었다. ‘그래비티’로 오스카상을 탄 준수한 모습의 쿠아론은 액센트 있는 발음으로 질문에 차분하게 대답했다. 자신의 어릴 적 얘기여서 그런지 가끔 감정에 사로잡히기도 했으나 곧 이어 감정을 추스르고 꼿꼿한 자세로 논리정연하게 대답했다. ‘로마’는 2월 24일에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 감독 및 촬영상 등을 탔다.  


영화는 기억에 관한 것인데 감독의 가장 아름다웠던 것과 함께 가장 고통스러웠던 기억은 무엇인가.

어릴 적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던 기억은 부엌 주변에서 보낸 것이다. 그냥 부엌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보내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난 부엌에서 있으면서 정신적으로 자양분을 섭취했다. 고통스러웠던 것은 이 영화에서 다 보여줬다. 그런데 기억이란 것은 감정적인 것이어서 때로 사실이 아닌 것도 진짜처럼 느끼게 만든다.


영화의 진행속도가 매우 느린 것은 무엇 때문인가.

기억은 모습일 뿐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난 처음부터 이 시간과 공간을 찬양하기로 했다. 시간과 공간은 우리를 완성시켜주는 것이자 사람들을 신비한 맺음으로 연결시켜 준다. 존재란 고독이다. 우린 다 혼자다. 삶에 의미를 주는 단 하나의 것이란 사람들 간의 애정의 연결이다. 난 그래서 영화에서 그 것을 반영하고자 했다. 내 과거라는 시간을 충분히 표현하려고 시공의 여유를 선택한 것이다.


영화를 만들면서 기분이 어땠는지.

각본을 쓰고 촬영 장소를 선정하고 배우들을 고르고 또 의상과 차를 고를 때만해도 정신이 없어 다른 생각 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촬영이 시작된지 3주쯤 지나서야 내가 무얼 하는지를 깨달았다. 나와 우리 가족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내가 어릴 적에 보낸 집에서 내 과거를 재창조하는 것을 보자니 매우 고통스러웠다.


이 영화는 특수효과가 판을 치는 요즘 영화와 완전히 다른데 그런 상황에서 이런 영화를 만들기가  힘들었는가.

내 생애 지금에 와서야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무언가 절대적으로 솔직한 행위를 하려면 실패할 각오를 100% 지녀야 한다. 내 과거 영화에선 유명 배우를 쓰거나 장르를 따르거나 하면서 실패하지 않도록 안전망을 쳐 놓았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완전히 공백 속으로 뛰어드는 작업이었다. 난 사실 처음에 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좋을지를 몰랐다. 그래서 심연으로 뛰어들기로 했다. 우리는 심연으로 뛰어들 때 비로소 지식을 취할 수가 있다.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다.


청소부의 종소리와 칼날 가는 연장의 돌아가는 소리 등 과거의 도시의 소리가 생생한데.

모든 도시는 각기 나름대로의 소리와 리듬을 갖고 있다. 난 여행을 하면서 그 도시의 리듬에 귀 기우리기를 즐겨한다. 그런데 난 처음에 칼 가는 연장의 돌아가는 소리가 멕시코시티 만의 독특한 소리인줄 알았는데 여행을 하면서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마드리드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그 연장의 본고장이 스페인임에 분명하다.


이 영화는 여러 영화제에서 호응을 받았는데.

영화가 오로지 로마에서의 내 얘기일 뿐만 아니라 보편적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인간의 경험이란 결국 같은 것이어서 내 얘기가 사람들을 연결 시켜준 것으로 본다. 문화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나서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보고 깊이 감동했다. 영화를 보자마자  사람들이 자신의 어릴 시절에 대해 얘기를 하는 것을 목격했다. 따라서 영화란 모두에게 보편적인 것이다. 특히 이 영화는 사람들과 가족의 얘기여서 더욱 그렇다.


영화에선 감독이 함께 유년기를 보낸 가정부와 보모가 중요한 구실을 하는데.

그들은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심부름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모들이 하는 일을 떠맡는다. 나도 이런 환경에서 자랐는데 특히 가정부인 리보를 만난 것이 큰 축복이다. 그녀는 내가 한 달 됐을 때 우리 집에 들어 왔다. 내 형을 제외하고 나를 비롯해 내 두 동생은 그녀를 모두 엄마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내가 좀 크고 나선 더 이상 엄마가 아니었다. 난 그녀에게 이젠 내가 나이를 먹었으니 너와 결혼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리보와의 관계로부터 넉넉한 자양분을 공급 받았다.


감독은 부엌에서 있었을 때가 가장 즐거웠다고 했는데 요즘 감독의 부엌은 어떤 모양인가.  

우리 집 부엌의 상은 내 아이들이 숙제를 하는 책상 구실을 한다. 부엌은 가정의 중심이다. 옛날에는 따뜻한 불을 주고 밥을 지을 수 있는 아궁이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였었다. 아궁이는 가정의 영혼이다. 우리 집 부엌의 대부분은 아이들 몫이나 난 그들이 차지하지 않는 공간에 있는 소파에서 일을 한다. 따라서 난 사무실에 안 나간다. 난 평생 사무실을 써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멋진 리빙룸을 가질 수 있지만 결국 종착점은 부엌이다.


영화에서 감독의 어머니 역인 소피아는 가정부에게 “여자는 늘 혼자다”라고 말하는데 그것이 감독의 견해인가.

그것은 소피아가 남편과 이혼을 하기 때문에 한 말이다. 1970년대 멕시코에서 여자가 이혼한다는 것은 1930년대 미국에서의 그것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그 여자는 사회로부터 낙인을 찍히게 된다. 가정을 못 지켰다고 해서 온갖 비판을 받았다. 내 기억에 내 어머니도 같은 입장이었는데 내 외삼촌도 어머니가 가정을 지키지 못했다고 해서 비판을 했다. 그러나 영화에서의 그 대사는 모든 여자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귀국해 스페인어로 영화를 만든 경험이 어땠는지.

그것은 거의 생태적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우린 다 세계인이다. 그러나 각자의 문화적 뿌리에 의해서만 세계인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영혼의 불임을 맞게 된다. 따라서 내가 고국에서 모국어로 내 경험을 토로한 것은 내 생명을 살리는 행위였다.


미국에서 성공한 멕시칸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지금 전 세계가 이민에 대해 반감을 표시하는 등 보수화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미국사람들은 역시 이민자인 나에 대해서 ‘너는 달라’라고 말한다. 그 것은 내가 백인이고 성공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민자는 수용하고 어떤 이민자는 거부한다는 것은 사회적 편견에서 유래되는 것이다. 요즘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매우 걱정스럽다. 이 영화가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는 하나이며 같다는 것을 깨우치게 해주길 바랄 뿐이다.  


영화에서 사람들도 그렇고 개나 새까지 모두 집과 새장이라는 우리에 갇힌 것처럼 묘사됐는데 의도적인가.

아니다. 그러나 그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우리의 존재는 여러 면에서 우리에 갇혀 있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벽을 허물고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밖에도 우리를 가두고 제한하는 것들이 많다. 사회적 이념적으로 제한하는 것들이 있다. 따라서 진짜 자유로우려면 영혼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영화에서 감독의 경험을 말하면서 감정을 절대적으로 억누르고 객관적으로 얘기하고 있는데 의도한 바인가.

객관적 경험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사람들과 그들이 처한 상황을 믿고 또 존경하는 태도를 취하고자 했다. 어릴 때 경험 속으로 돌아가는 향수 짙은 영화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카메라도 사람과 사물로부터 멀리 두고 객관적으로 관찰하고자 했다. 현재의 유령이 과거로 돌아가는 셈이었다.


줄리안 슈나벨 감독은 “나는 내 영화다”라고 말했는데 감독도 같은 생각인가.

난 내 영화보다 나은 무언가가 되길 희망한다. 그러나 난 개인적이 아닌 영화는 못 만든다. 그래야만 내 정열과 상상을 몽땅 거기에 쏟아 부을 수가 있다. 그런 식으로 내 영화와 연결되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만든 영화 중 내게 가장 가까운 것은 ‘작은 공주’다. 그것도 내 경험의 한 부분을 말하고 있다. 물론 이 영화도 나와 더 이상 가까울 수가 없는 영화다. ‘칠드런 오브 맨’과 ‘그래비티’도 다 내가 이해하고자 하거나 내가 겪은 끝없는 곤경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내게 가장 가까운 영화는 ‘리틀 프린세스’와 ‘로마’다.

글 : 박흥진<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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