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맛을 창조하는 ‘블렌딩’의 예술 품종, 포도밭, 배럴, 빈티지를 섞는다

와인 정보를 읽다보면 ‘블렌드’ 혹은 ‘블렌딩’(blending)이란 단어가 자주 나온다. 보르도 블렌드, 카버네 블렌드, 론 블렌드, 화이트 블렌드 등… 
 

블렌딩은 양조할 때 와인 원액을 섞는 기술이다. 한 가지 포도만으로 맛있게 만들기 힘들 때, 또는 매년 달라지는 재배조건 속에서 균일한 와인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시행된다. 
 

전세계 와인의 90% 이상은 어떤 형태로든 블렌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품종을 섞는 것은 기본이고, 같은 품종이라도 여러 포도밭에서 나온 것이나 한 포도원 내 여러 작은 블록에서 생산된 것을 섞기도 하며, 계약 재배한 다른 포도원의 것을 섞을 수도 있다. 또 여러 종류의 오크통에서 발효 혹은 숙성한 것을 섞는 일도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다른 빈티지의 와인을 섞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샴페인이다. 샴페인과 스파클링 와인은 대부분 수확년도를 표기하지 않고 넌 빈티지(NV)로 출시하기 때문에 해마다 비슷한 맛을 내기 위해 여러 해에 걸쳐 수확된 와인을 섞어서 양조하는 것이다. 
 

포도나무를 재배하여 열매를 수확하기까지가 자연의 영역이라면, 블렌딩은 순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경험과 지식, 감각과 직관을 총동원해 수많은 원액을 절묘하게 섞는 일은 오랜 경험으로 숙달된 와인메이커들만이 해낼 수 있는 기술이요 예술이다. 언제 블렌딩 하느냐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그 시점을 찾는 것도 중요하고, 블렌딩한 와인이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예측할 수 있는 직관력도 필요하다. 기억력이 좋아야함은 물론이다.
 

이들은 포도를 수확한 직후, 발효조에 있을 때, 배럴에 있을 때, 계속 시음하면서 특징을 기록하고 등급을 매긴다. 일단 블렌딩에 들어가면 ‘완벽한 맛’을 찾을 때까지 수십번이고 같은 작업을 되풀이하는데 이 과정이 몇날 몇주 심지어 몇달이 걸리기도 한다. 파이널 블렌드가 나왔어도 며칠 시간을 두었다가 다시 테이스팅하여 재평가한 다음 확실하게 정한다. 
 

오늘날 전세계에서 실시되는 블렌딩의 기원은 프랑스의 보르도와 론의 와인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토양과 국지기후가 매우 다양한 이 두 지역은 수백년의 경험을 통해 각 포도밭 구획에 적합한 품종을 찾아 재배해왔고, 매년 기후조건에 따라 다르게 익는 포도 품종을 적절하게 섞어서 우아하고 섬세하고 복합적이며 오랜 숙성이 가능한 와인을 생산해왔다. 
 

95%가 적포도주 품종인 보르도 지역에서는 5개 품종을 블렌딩한다. 카버네 소비뇽, 멀로, 카버네 프랑, 말벡, 프티 베르도가 그것으로 이들의 배합을 ‘보르도 블렌드’라고 하고, 신세계에서는 ‘카버네 블렌드’라고도 하며, ‘클라렛’(영국에서 사용해온 단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검은 과일의 강렬한 맛, 바디와 태닌, 구조감이 좋고 롱피니시가 특징인 카버네 소비뇽, 딸기와 체리 맛이 있고, 섬세하고 유연하며 중간 정도의 태닌을 가진 멀로, 붉은 과일과 미네랄, 색깔이 진하고 아로마가 풍부하며, 최종 블렌딩에서 구조감과 복합미를 부여하는 카버네 프랑, 짙은 색상과 강렬한 아로마, 이국적인 맛과 태닌이 많은 프티 베르도, 진하고 부드럽고 풍요로운 과일 맛이 지배적인 말벡, 이 다섯 품종을 최상의 비율로 섞을 때 위대한 보르도 와인이 탄생한다.
 

론 지방에서는 GSM이라 하여 그르나슈, 시라, 무르베드르를 중심으로 훨씬 더 많은 품종을 블렌딩하여 샤토뇌프 뒤 파프라는 명품 와인을 생산한다. 화이트 품종을 포함하면 19개까지 품종을 섞는 것이 허용되고 있으니 얼마나 다양한 맛을 창조할 수 있을까. 더구나 신세계에서는 전통적으로 함께 섞지 않는 품종들의 배합도 적극적으로 시험하고 있으니 와인 블렌딩의 예술은 한계가 없어 보인다. 

글 :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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