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익은 카버네 소비뇽 한잔으로 오감이 만족하는 우아한 축제를

올 겨울 비가 많이 오고 추운 날씨가 계속되면서 와인을 더 자주 마시게 된다. 날이 궂고 기분도 스산한 저녁이면 차가운 화이트와인보다는 진하고 무거운 레드와인을 찾게 되는데 아무래도 가장 즐겨 마시는 것이 카버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이다.

카버네 소비뇽은 ‘적포도주의 왕’, 가장 인기 있고 가장 중요하며 가장 많이 재배되는 품종이다. 오래 숙성할 수 있는 최상급 와인(보르도 그랑크뤼, 캘리포니아 컬트와인, 메리타지 등)이 모두 캡(카버네 소비뇽의 준말)을 주인공으로 블렌딩 해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렇게 중요한 품종이지만 카버네 소비뇽의 기원은 의외로 오래지 않다. 품종의 근원에 대해 많은 추측과 이론이 있었지만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1996년 UC 데이비스의 양조학 팀이 실시한 DNA 검사 결과였다. 이에 따르면 카버네 소비뇽은 1700년대 중반 보르도에서 카버네 프랑과 소비뇽 블랑의 교접으로 생겨났다.
 

전형적인 카버네 소비뇽의 맛은 검은 과실들(블랙 체리, 블랙베리, 블랙커런트)과 피망, 연필심(흑연), 스파이스(정향, 넛멕, 민트), 올리브 등인데 많은 부분이 카버네 프랑으로부터 왔고, 간혹 느껴지는 풀과 허브 같은 맛은 소비뇽 블랑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다. 

카버네 소비뇽은 포도알이 작고 껍질이 두꺼워 태닌이 많이 함유돼있다. 와인의 숙성에서 가장 중요한 성분이 태닌인데 이것이 많기 때문에 캡을 많이 사용한 와인은 오랜 숙성이 가능한 것이다. 약간 더운 지방에서 잘 자라는 카버네 소비뇽은 재배가 쉽기 때문에 세계 어디서나 많이 심고 있지만 토양, 기후, 재배법에 따라 천차만별의 포도가 열린다. 특히 덜 익었을 때 수확한 포도와 푹 익었을 때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은 완전히 다른 맛을 표현하기 때문에 그 특징을 알아두면 자기가 선호하는 캡의 산지도 알 수 있게 된다. 

덜 익었을 때 수확한 포도로 와인을 만들면 풀, 채소, 허브 같은 푸른 맛이나 홍차, 올리브가 많이 느껴진다. 반면 푹 익은 포도로 만든 와인에서는 프룬이나 건포도 같은 말린 과일맛과 함께 약간 달고 알코올이 15도 정도로 높다. 어떤 맛을 좋아하는가는 개인의 취향에 달린 문제다.

카버네 소비뇽은 오크통에서 숙성시켜야 맛이 훨씬 더 좋아지고 오크에서 커피, 후추, 시가, 초컬릿 같은 것이 얻어진다. 잘 만든 캡은 입체적이고 씹을 수 있으며 묵직하고 복합적이다. 또한 잘 숙성하면 더 우아하고 부드러워지는데 세월이 흐르는 동안 거친 맛과 과일향이 점잖게 진화하고 태닌은 가라앉아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질 좋은 캡은 5~10년 이상 두었다 마시면 환상적인 맛을 내고, 최상급 와인은 몇십년의 숙성도 가능하다. 

카버네 소비뇽은 스테이크와 프라임 립, 햄버거 등 레드 미트와 잘 어울리는 와인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그런데 요즘은 육식을 줄이라는 경고가 계속 나오고 현대인의 식생활이 야채 위주의 다이어트로 바뀌고 있어서 캡의 위상도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맛있게 잘 익은 카버네 소비뇽 한잔은 다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다. 그 한잔으로 오감이 충분히 즐겁고 감사하다. 

다음은 워싱턴 포스트가 선정한 중간가격대의 맛있는 카버네 소비뇽이다. 

2014 Cousiño-Macul Antiguas Reservas Cabernet Sauvignon Maipo Valley, Chile, $15 

2015 Chateau Larose Perganson Haut-Médoc Bordeaux, France, $30 

2016 J. Wilkes Cabernet Sauvignon Paso Robles, Highland District, $33 

2015 Counselor Cabernet Sauvignon River Pass Vineyard Alexander Valley, Sonoma County, $40 

2017 Huntsman Cabernet Sauvignon Columbia Valley, Wash., $20 

글 : 정숙희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