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자회사 ‘모기지 원 그룹’
리차드 탁 대표

“ 나를 알아가는 과정 거치며 맞는 직업 만났죠.”

On April 20, 2018


 

 
탁 대표는 융자 에이전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말의무게' 라고 말한다.

 

누구나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맞는 직업을 갖길 바란다.

흥미의 정의는 ‘어떤 대상에 마음이 끌린다는 감정을 수반하는 관심’이고, 적성은 ‘어떤 일에 알맞은 성질이나 적응 능력’을 뜻한다. 흥미와 적성은 타고나는 경우도 있고, 적응을 통해 길러지기도 한다.

대학 지원 결과가 속속 도착하는 매년 봄이면, 12학년 자녀를 둔 가정에선 희비가 엇갈리곤 한다.
 

그러나 혹시라도 가장 원하는 학교에 되지 않았다고 해서 너무 좌절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자신을 잘 파악하고 적성과 흥미에 맞는 분야를 공부할 수 있다면, 또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차차 나를 알아갈 수 있다면, 그래서 새로운 길로 적응해갈 수 있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앞으로 어떻게 인생이 풀려나갈 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희일비하기보다, 진득하게 자신을 들여다보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뚝심이 필요하다.
 

융자회사 ‘모기지 원 그룹’의 리차드 탁 대표는 후천적으로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발견해 직업적 만족도가 높은 경우다.

부모님의 기대에 맞춰 엔지니어링 전공으로 USC에 입학한 그는, 재학 중 파이낸스 전공으로 바꿨다. 큰 아들은 의사, 딸은 변호사로 키운 그의 부모님은 3남매 중 막내인 그가 엔지니어가 되길 바랐다.
 

그러나 공부해보니 공대는 영 적성이 아니었다고. 파이낸스로 전공을 바꾼 그는 졸업 후 여성의류 소매업을 하다가 이 역시 맞지 않는다고 판단, 융자업계에 입문했다.
 

지금은 청년들 누구에게나 이 직업을 권할만큼 만족한다니, 그는 자신의 길을 잘 찾아온 셈이다.






 

브라질에서 미국으로, 공대에서 파이낸스로
 

탁 대표는 ‘포르투갈어도 능숙한 남자’다.

8세이던 72년 의류업을 하시는 부모님을 따라 브라질로 이민 가, 10년을 거주한 덕분이다. 브라질에 살지만 외국인 학교를 다닌 덕분에 그는 영어도 모국어처럼 익혔다. 일하느라 바쁘신 부모님과 한국어로 대화할 시간이 많지 않아, 그는 자라면서 포르투갈어와 영어를 한국어보다 잘 했다고. 한국어는 융자 경력 25여년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익혀서 이제는 3개 국어에 능숙하다.
 

82년 브라질에서 미국 USC로 유학 온 그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공대로 진학했으나, 전공을 바꿔 파이낸스로 졸업했다. 이후 그는 산타모니카와 웨스턴가 인근에 여성의류 소매업소를 운영했지만 얼마 안 가 접었다.
 

“7일 내내 가게를 지키면서 손님을 기다리는 일이 제겐 영 안 맞더라고요. (웃음) 공대가 제 적성이 아니었던 것처럼요. 저는 사람 만나 대화하길 좋아하고 유대관계를 중시해서, 좀 더 활동적인 일을 원했던 것 같아요.”

89년 그는 당시 한인사회에서 유명했던 융자회사 ‘아메리안’에 들어가 ‘맨 땅에 헤딩’하는 혹독한 훈련을 받았고, 이후 대학선배가 차린 모기지 회사에 풀타임 직원으로 취직하면서 이 분야가 그의 진로임을 확신했다.

 

은행에서 경력 쌓다
 

94년 그는 캘리포니아 페더럴 뱅크, 아메리칸 세이빙스 뱅크 등 은행 소속의 융자 에이전트로 일했다. 당시 대형 은행인 ‘워싱턴 뮤추얼’(WAMU)이 아메리칸 세이빙스 뱅크 등을 사들이면서 그는 2008년 초까지 약 13년간 WAMU에서 근무했다.
 

부동산과 융자업계가 호황이던 2003년부터 2006년 사이 그도 승승장구해, 2007-2008년 그는 미 전역의 WAMU를 통틀어 실적 9위를 기록하면서 탑 10% 내의 에이전트만이 해당되는 ‘프레지던트 클럽’에 들기도 했다.
 
“제 사무실을 차리는 방법도 있었지만, 저는 당시 은행 소속을 택한 것이 시기상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미국 은행에서 한인 브로커로서는 제가 거의 유일했고, 그래서 94년 한인 신문에 처음 광고를 내봤더니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광고가 나간 날 제가 오피스에 출근하니, 리셉셔니스트가 제게 화를 내더라고요. 전화 메시지를 50개나 받아놨다면서요. (웃음) 그 때부터 1년에 20만 달러씩 광고에 지출했고 그만큼 한인 손님들의 호응도 뜨거웠죠. 90년대 중후반은 은행 상품도 워낙 다양하게 쏟아진 호시절이었고, 저도 영어와 한국어에 능숙한 것이 실적에 큰 도움이 됐어요. 정말 신나게 일했지요.”

 

서브 프라임 때 고생한 일화
 

한인 시장에 눈 뜬 WAMU는 2007년 말 부에나팍 지점의 2층 전체를 내주며 6명의 한인 마케팅 전담팀을 구성하고, 탁 대표를 매니저로 임명했다.
 

그러다 2008년 초 서브 프라임 파동이 터졌다. 융자는 물론 미국 경기가 휘청이는 상황에서 WAMU의 한인 전담팀도 해체됐고, 그는 웰스파고로 직장을 옮겼다.
 

“13년간 일하던 은행에서 하루아침에 짤렸죠. (웃음) 월 평균 30개씩 론을 했는데 서브 프라임 직후 5개로 줄었더라고요. 엄청 고생했지요. 이 때는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휘청이던 때에요. 하지만 서브 프라임 전엔 이 업계에 문제가 많았던 게 사실이에요. 심하게 소득을 축소하고 수입을 조작하는 관례가 횡행했고 융자 승인도 너무 쉽게 났고요. 터질 게 터졌다고나 할까요. 필요한 정화기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11년 이자율이 하락하면서 다시 재융자 바람이 불었고, 그는 2012년 웰스파고에서 만난 동료 준 최씨와 동업해 ‘모기지 원 그룹’을 차렸다. ‘모기지 원 그룹’은 2년 전 모기지 뱅킹을 시작했고 론 오피서까지 30여명의 직원을 두고있다.

 

빡빡한 재정상황에 주눅들지 말길
 

그는 25여년의 융자경력동안 이자율이 12% 까지 올랐다가 3%대로 떨어지는 ‘롤러코스터’를 3번이나 경험했다.

“요즘은 자기가 살 집의 경우 세전 수입의 30%, 투자용의 경우 40% 를 다운해야 적정선입니다. 무리하지 말고 안정적인 투자를 하시길 권해드리고요. 저축 못하는 손님들도 많고 최고 여유자금이라도 6개월 생활비 정도일만큼 다들 빡빡하게 사시니, 너무 자신의 재정상황에 의기소침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저는 모기지 뱅킹을 키우면서 앞으로도 영원한 융자맨으로 남을 겁니다.”



 

모기지 원 그룹 : 전화 (714)267-4240

주소 : 5661 Beach Blvd. #202 Buena Park

웹사이트 : www.mortgage1group.com

글 : 김수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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