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글렌 클로스



글렌 클로스는 71세라는 나이답지 않게 젊고 신선했다. 우아하고 기품이 있으며 아름다웠다.  질문에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차분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대답했는데 매우 지적이었다. 인터뷰 후 사진을 찍을 때 필자가 한국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자 클로스는 명확한 발음으로 “안녕하세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아내’(The Wife)에서 자신의 야망과 재능과 꿈을 접고 40년 간 독선적인 문학가 남편 조 캐슬맨의 뒷바라지를 해오다가 남편이 노벨문학상을 받는 전 날 마침내 독립을 선언하는 아내 조운으로 나온 클로스와의 인터뷰가 베벌리힐즈의 포시즌스호텔에서 있었다. 클로스는 이 역으로 6일에 열린 제76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드라마)을 탔다. 


조가 노벨상을 받기는 하지만 사실 그의 글은 조운이 썼는데 왜 조운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는가.

조운이 젊었을 때만해도 여자가 쓴 글은 출판되기가 매우 힘들었을 때다. 따라서 작가가 되기 위해 태어나다시피 한 글 재주가 비상한 조운은 자기가 쓴 글을 사람들이 읽도록 남편을 자기 대신 앞에 내세운 것이다. 조운은 자의로 자기가 쓴 글로 남편이 유명 작가가 되도록 만든 것이다. 조운은 엄청난 타협을 한 것이다.


조운과 조 간의 균열은 어디서 왔다고 보는가.
그것은 40년간 결혼 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생기다가 급기야는 조운이 더 참지 못할 정도로 그 간격이 커진 것이다. 특히 조운은 남편의 아들에 대한 압제적인 태도에 크게 고민했다. 조는 역시 작가인 아들이 재능을 지닌 것이 두려워 아들의 글을 혹평하는데 이런 아버지의 횡포로 인해 상처를 입은 아들은 아버지를 두려워한다. 이에 대해 조운은 어머니로서 죄책감을 느끼게 되고 그것이 그의 가슴에서 들끓다가 마침내 폭발한 것이다. 따라서 조운과 조의 관계의 균열은 이런 것들이 축적돼 초래된 것이다. 


당신의 딸도 배우인데 그에 대해 어떻게 조언하고 격려하는가.

나는 내 딸이 연기 재능을 타고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명 인사의 자식이어서 남보다 갑절로 자신을 채찍질 하고 있다. 유명 인사의 딸이어서 자기 주위에 몰려드는 사람들 중 과연 누가 진짜 친구인가를 꼼꼼히 생각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딸은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는데 졸업 후 한동안 진로 모색으로 고생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 내게 와서 어떻게 해서라도 피해 보려고 했지만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은 연기라고 고백했다. 난 딸이 자기의 능력을 실제로 보여 줄 수 있는 역을 연기를 하는 것을 보면 매우 즐겁다.


조운은 시대 탓에 남편을 위해 자기를 희생해야 했는데 그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영화가 #미투 움직임이 활발한 요즘 나온 것은 적시타를 친 것이나 마찬 가지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모든 곳에 있으며 영화계도 마찬 가지다. 내 경우 42년간의 연기생활 동안 여러 남자와 관계를 맺었다 끊었다 하면서 험한 길을 걸어 왔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더 생명력이 넘치고 다음에 무엇이 올 지에 대해 몹시 궁금해 한다. 나는 늦게 만개하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의 이름을 널리 알려준 마이클 더글러스와 공연한 ‘위험한 정사’에 나온 지 30년이 지났는데 지금 그 영화를 보면 소감이 어떤가.

얼마 전에도 그 영화를 얘기하면서 남자가 아니라 내 쪽에서 보는 시각으로 다시 만들면 어떨까 하는 말을 했다. 왜냐하면 그 영화는 남자의 하루 노리개에 지나지 않는 여자의 입장에서 얘기한 것이 아닌데다가 왜 그 여자가 그런 행동을 취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도 분명히 설명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에 만들었다면 그 여자의 입장에서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어떻게 정신적 또 육체적으로 뚜렷하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가.

난 한 번도 이 곳에서 살지 않고 동부에서 살아 왔는데 아마 그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 난 그 어느 때보다 요즘에 와서 항상 컵을 가득 채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있다. 난 세상에 빈 컵이 아니라 가득 찬 컵으로 다가가고 있다. 즉 그 것은 침묵하고 생각하고 독서하고 또 내 개와 함께 하면서 자신을 위해 시간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요즘은 나날이 너무나 많은 일들이 벌어져 그 것들을 단순화 할 필요가 있다.


음식 조절은 어떻게 하며 음주를 하는지.

뭘 먹어야 하는지는 알지만 어떤 때는 그 것을 지키고 또 어떤 때는 그렇지 못하다. 술은 많이 마시진 않지만 가끔 적당히 마실 수는 있다.


이 영화의 스웨덴 감독 뵤른 룬지를 당신이 직접 골랐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우선 그 사람의 개성과 분위기였다. 말해보니 매우 감수성이 강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란 것을 알았다. 본능적으로 그를 믿을 수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세트에서 촬영할 때 그가 결정적인 순간에 카메라를 어디에 놓아야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을 보고 그를 완전히 믿었다. 카메라는 배우의 연기를 번역하는 작업을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데 그 것을 모르는 감독들이 많다.


여류 작가와 남자 작가의 차이는 무엇이며 어느 작가를 좋아하는가. 책은 많이 읽는가.

그 차이에 대해선 모르겠다. 요즘 작가로는 재디 스미스를 좋아하고 어릴 때는 로라 잉갈스 와일더의 책을 읽으며 자랐다. 그리고 난 항상 책을 읽는다.


만약에 영화 제목을 ‘남편’이라고 했다면 어떤 영화가 되었을 것으로 보는가.

완전히 다른 얘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아내’라는 제목이 내용에 더 부응한다고 본다.


당신은 글을 쓸 때 음악을 들으며 쓰는가.

아니다. 난 글을 쓸 때 음악을 들으면 집중을 할 수가 없어 음악을 듣지 않는다. 그러나 내 딸은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쓴다.


영화에서 당신은 진실을 캐내려고 집요하게 당신을 따라 붙는 기자를 기피하는데 당신은 우리들 기자를 좋아 하는가.

난 저널리즘에 감사하고 있다. 언론은 민주주의에 있어 엄청나게 중요한 것이다. 감정적이 아니라 냉철한 논리를 추구하는 언론이야 말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아직도 그런 언론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신에게 감사한다.


트럼프 편만 드는 폭스 뉴스를 어떻게 보는가.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이니 그들의 소리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위험한 것은 언론이 사실을 조작하는 것이다. 진실이 왜곡 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자기가 한 일을 남이 자기 것처럼 내세운 사람을 아는지.

영화의 내용과 똑 같지는 않자만 내 어머니는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는데도 의사인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어머니는 결코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는데 이를 곁에서 바라봐야만 하는 나는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내 어머니 세대의 여자들은 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러 남자들과의 관계에서 배운 것은 무엇이며 아직도 반려자를 찾는가.

자신을 알고 인간으로서 자신에게 기쁨과 충족감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굳건히 지키는 것이다. 난 그 누구도 찾고 있지 않다.


당신이 노벨상을 받는다면 어떤 부문에서 받고 싶은가.

신경과학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두뇌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위험한 정사’에서 마이클 더글러스의 딸이 애지중지하는 토끼를 끓는 물에 집어넣는데 토끼 고기 먹어본 적이 있는지.

벨기에에서 양념과 함께 먹어봤다. 아주 맛있었는데 다시 먹을 생각이다.


결혼이 아직도 필요한 제도라고 보는가.

개인적으로 그렇다고 본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평생 갈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것은 사람을 보다 부유하게 만들어 준다. 난 비록 그것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결혼을 믿는다. 결혼제도를 유지하기가 그렇게 힘들다면 그것은 사회에서 퇴화했을 것이다. 집에 함께 갈 수 있고 당신의 뒤를 지켜줄 수 있으며 당신을 이해하고 축하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인가.


영화에서 당신 남편은 나르시스트인데 독재적인 나르시스트가 통치하는 요즘 미국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질문은 내가 매일 자문하는 것이기도 하다. 뉴스를 틀면 듣고 싶지 않은 것들만 나오는데 그렇다고 안 들으면 스스로를 현실과 단절시키게 된다. 미국은 지금 엄청난 스트레스와 불안과 걱정에 짓눌린 상태다. 그럼 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투표 밖에 없다. 투표를 통해 말한다는 것이야 말로 민주주의의 초석이다.

글 : 박흥진<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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