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시’ 산불에 말리부 와인산지 초토화

50여 포도원 “잿더미 딛고 재기하겠다”

포도밭 때문에 집을 구한 시엘로 빈야드 <Richard Hirsh>

캘리포니아의 늦가을 산불 대란이 연례행사가 되었다. 그리고 화마가 휩쓸고 지나가는 지역에 와인산지가 포함되는 것도 이제 매년 있는 일이다.

2016년에는 중가주 파소 로블스부터 북가주 몬터레이 카운티까지 12만3,000에이커에 이르는 지역이 여름 내내 크고 작은 산불에 시달렸다. 2017년에는 북가주 와인 컨트리 전체에 막대한 피해가 있었다. 나파, 소노마, 멘도시노 지역에서 40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5,700개 건물이 전소됐으며 30여개 와이너리가 파손되는 재난을 겪었다.

올해는 말리부다. 말리부에도 와인산지가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최근 수년간 남가주 해안 산지에 포도밭이 급속하게 늘어났고, 이 지역 대표기구(Malibu Coast Vintners and Grape Growers Alliance)에 등록된 포도원과 와이너리는 50곳에 달한다. LA에서 가깝기 때문에 주말이면 찾는 시음객이 많고, 무엇보다 결혼식과 파티가 자주 열리는 곳으로 자리 잡은 지 꽤 오래됐다.

그런데 지난 11월8일 벤추라 카운티에서 시작된 ‘울시 파이어’(Woolsey Fire)가 강풍에 101번 프리웨이를 타고 사우전 옥스로 번지면서 말리부 산을 넘어 이곳 와인산지를 초토화시킨 것이다. 2주 동안 151평방마일을 태우고 1,643채의 건물을 전소시킨 울시 파이어로 인해 말리부 코스트 와인산지는 200에이커의 포도밭과 건축 및 시설물이 대파됐다.

그렉 바넷 MCVGGA 회장은 “엄청난 속도로 강풍이 부는 바람에 불길이 순식간에 번졌다”고 말하고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업계의 거의 모든 포도원과 와이너리가 큰 피해를 입었다고 전했다. 이 지역 와인 투어와 테이스팅의 중심 도로였던 케이난 듐 로드(Kanan Dume Road)가 불길의 통로가 되는 바람에 주변 와이너리들이 불쏘시개가 되었다고 설명한 그는 이 길이 복구되는 데만도 최소 6개월에서 1년은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안타까운 것은 이 지역이 AVA(미국포도재배지역)으로 공인된 것이 불과 4년전이고, 이제 막 와인산업이 커가고 있던 중이었다는 사실이다. 산타모니카 국립휴양지(18만2,000에이커) 내의 4만5,000에이커가 AVA로 승인된 후 산지가 계속 확대되던 중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울시 파이어로 말리부의 주택이 불타고 있다 <AP>

한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포도밭으로 둘러싸인 집들은 집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포도밭이 방화벽 구실을 한 셈으로, 포도나무는 키가 작은데다 바싹 붙여 심지 않고 간격을 두기 때문에 맹렬한 기세로 타오르던 화마도 포도밭에 이르면 기세가 약해지면서 사그라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말리부 솔스티스 빈야드(Malibu Solstice Vineyard)의 단 슈미츠는 집이 포도밭 한 가운데 있었던 덕분에 집만은 지킬 수 있었다. “200피트 높이의 불길이 달려들어 모든 양조시설과 장비, 건축물, 창고, 차량들을 깡그리 태웠다. 그러나 포도밭으로 넘어오면서 불길이 1피트 정도로 크게 잦아들더니 소진돼 집을 지킬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시엘로 빈야드(Cielo Vineyards)의 리처드 허쉬 역시 마찬가지다. 멀홀랜드 드라이브와 케이난 듐 로드가 만나는 산꼭대기에 위치해있어 기막힌 경관의 웨딩 사이트로 유명했던 그의 와이너리는 포도밭 한가운데 지어진 집과 창고만 남기고 모두 잿더미가 됐다. “빙 둘러 심은 1만 그루의 포도나무가 집을 지켜주었다”는 그는 “너무도 끔찍한 재난이었지만 다시 포도나무를 심고 시작하겠다”고 다짐했다.

솔스티스의 단 슈미츠 역시 새롭게 포도원과 와이너리를 재건하겠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번 화재로 20여년 운영해온 말리부 빈야드(Malibu Vinyard)를 집과 건축물까지 완전히 잃어버린 짐 팔머는 더 이상 일할 수 없다며 그대로 은퇴하겠다고 말했다. LA에서 가장 가까운 말리부 와인산지가 상흔을 훌훌 털고 일어나 재기하기를 기대한다.
글 : 정숙희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