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케어 전문가
제인 김 씨

지혜를 배우고, 생에 대해 대범해지다


On March 30, 2018

 


인생이란, 뭘까.

사춘기 시절 알 수 없는 혼돈과 불안을 겪으며 그 질문과 답의 언저리에 다가갔다면, 사람들은 대체로 30-40대를 지나면서 인생의 실체를 조금씩 알아가곤 한다.

영원할 줄만 알았던 젊음은 한시적인 사치이자 달콤한 형벌이었고, 삶의 궤도에 쫓기며 속절없이 늙어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말이다.

그래서 노인들은 말한다. “인생 별 거 아니”라고. “전에는 중요하게 생각했던 허영이나 남들의 시선도, 지나고보니 아무 의미없다”고.
 

노인을 두고 ‘박물관’이자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흔히 일컫는 이유다. 수많은 이야기 보따리이고, 역사의 살아있는 증인이며, 인생 후반부까지 오면서 터득해온 지혜의 소유자라는 뜻이다.

물론, 이는 그 노인이 좋은 방향으로 성숙해왔을 때 해당되는 말이다. 먹어온 밥공기 수만 많다고 해서 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 대한 성찰, 그리고 생에 대한 통찰이 깊어질 수록, 그 사람은 잘 살아온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라면, 난감해진다.

메디케어 전문가 제인 김씨는 늘 노인들과 만난다. 고객의 연령대가 메디케어를 신청할 즈음인 65세 직전이기 때문이다.

이 운 좋은 사람은 노인들과 함께하면서 본인이 많이 성장했다고 말한다. “그들의 지혜를 배우면서 나도 인생에 대해 더 대범해진 것 같다”고 말하는 그녀. 이것도 축복이다.

 

보험 세일즈에서 메디케어 전문으로
 

제인 김씨가 메이케어 전문가가 된 것은 직업의 전환점을 찾기 위해서였다.

93년 도미, 대학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그녀는 2010년 보험 에이전트 자격증을 취득했다. “커미션 수입이 무제한이라니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이후 3년은 그녀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힘든 시기가 됐다.

“보험 세일즈 분야가 어떤 곳인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덜컥 자격증부터 땄어요. 그런데 100% 커미션으로 살아남는 그 업계가 내성적인 제 성격엔 너무 안 맞더라고요. 세일즈 성과를 높일만큼 적극적이거나 인맥이 좋지도 않았고, 인맥 관리를 위해 골프모임을 갖거나 친구 상대로 보험을 판다는 것이 제겐 정말 힘들었지요.”
 

그래서 생각한 게 ‘메디케어’ 틈새시장이었다. 백세 시대, 앞으로 노인 인구가 늘어날테니 이 분야의 전망이 괜찮을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다. 2012년 그녀는 메디케어 전문 에이전트로 전환했다.

“처음엔 나이 차이가 크니 손님 대하기 어려운 면도 있었어요. 그러나 이제는 제 성격도 좀 외향적이 됐고, 많이 둥글둥글해져서 손님들과 농담도 하면서 일을 즐기고 있습니다. 저희 부모님 생각도 나서, 점점 편안한 마음으로 대하게 되더라고요

 

새벽잠 설치는 직업
 

거의 100% 노인을 상대하는 직업은 어떨까.우선 그녀는 근무 외 시간이란 게 없다. 주말이나 새벽 2시, 아침 6시에도 전화가 걸려온다. 하루 평균 20여통의 통화와 상담을 하는 건 직업상 그렇다쳐도, 새벽잠을 설치는 건 사실 힘들었다.

“코피가 나는데, 또는 기침이 멈추지 않는데 응급실 가야하는 것 아니냐면서 새벽에 전화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웃음) 처음엔 저도 당황했지만 이제는 상황에 따라 침착하게 대처하곤 하지요. 그리고 아무래도 연령이 있는 분들이다보니 이메일이나 문자보다는, 전화통화나 만남으로 일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요. 간혹 가는 귀 먹으신 손님에게 전화로 설명해야할 때는,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하면서 제가 같이 목소리가 커지기도 하죠. 하하.”

 

인간은 각자 다 소중한 개체
 

이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현재의 직업을 사랑한다.

손님들에게서 듣는 인생 스토리의 재미에 푹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평생 살아온 이야기, 성공에 자부심을 갖거나 반대로 후회되는 내용들을 들으면서 그녀는 느끼는 점이 많다고 했다.
 

그녀 자신이 ‘굿 리스너’(good listener) 스타일이어서, 손님 이야기를 듣다가 감정이입돼 눈물 흘린 적도 있다.

“순탄하기만 한 인생은 없는 것 같아요. 자식 중에도 아픈 손가락은 하나씩 있기 마련이고요. 젊을 땐 숨기고 싶던 굴곡진 개인사도 나이가 드니 필터링(filtering)이 없어진다고, 그러시더라고요. 늙어서 돌아보니 다 ‘별 일 아니다’ 싶으면서 솔직하게 털어놓게 되는 거죠. 손님들 이야기를 듣다보면, 한 명 한 명이 각자 다 소중한 개체로 느껴져요. 우리가 어릴 때는 잘 모르는 남을 쉽게 무시하기도 하는데, 철 들고 보면 인간은 누구 하나도 무시받을 대상이 아닌, 가치있는 존재인 것 같아요.”

 

정신 건강하게, 인생 즐기며
 

진리에 대한 깨달음에 한발짝 다가간 것보다 큰 수확이 있을까.

그녀는 “손님들의 다양한 인생을 보면서 지혜를 배우고, 그래서 이제는 사소한 일에 아등바등하지 않고 대범해진 것 같다”며 웃는다.

예를 들면, 보험 일을 처음 시작할 당시엔 큰 돈 못 버는 것이 그렇게 괴로웠는데, 이제는 곁에 좋은 사람들 있고 내 몸 건강하다면 돈은 먹고 살만큼 벌어도 된다는 주의로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또 그녀는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확실히 사고가 긍정적이고, 운동으로 자기관리를 잘하는 노인들이 몸도 건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도 건강하게 늙어가기 위해, 필라테스와 근력 운동을 시작했다.

“65세가 요즘은 청춘이라고 하는데, 의외로 치매가 오거나 건강하지 않은 분들도 꽤 많아요. 1-2년간 계속 연락해온 분이 어느날 갑자기 제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기도 하고요. 자식들 다 키워놓고 여행가려했는데, 그 때가 되니 막상 몸이 아파서 못 가는 분들 보면 마음이 짠합니다. 인생이 뭔가 싶고, 순간순간 내 인생을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간혹 남편이 너무 가부장적이어서 고령에도 아내가 주눅들어 사는 경우를 봐요. 그럼 아내에게 우울증이 와서, 아무 의욕없이 죽는 날만 기다린다고 하기도 합니다. 안타깝죠. 물론 대부분의 노인분들이 ‘이제 죽어야지’ 하는 건 정말 거짓말이긴 하지만요. (웃음) 자녀들도 부모님의 심리상태가 어떤지, 자주 전화드리고 관심을 가지면 좋겠어요.”

 

단계적 인생 리모델링
 

앞으로 그녀의 계획은 무얼까.

“40대, 50대 저의 인생을 리모델링해 나가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사회복지학을 공부해서 양로호텔 분야에서 일할 생각도 있고요. 무엇이든 어르신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싶어요. 제가 30대에는 돈을 좇았고 사람 만나는 것도 싫었는데, 이제는 만남 자체가 기대돼요.”

그녀의 설렘과 행복한 기운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제인 김씨 전화 : (213)500-4286 
글 : 김수현 객원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