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Smyth LLP'
윌리엄 스마이스 변호사

“법이라는 외국어를 통역해 고객에게 회생의길 찾아주는 직업”

On September 28, 2018


 

 
“법이라는, 마치 외국어같은 언어를 고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통역, 번역해주는 직업이 변호사라 생각합니다.” 

 

윌리엄 스마이스 변호사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빈틈없이 법의 길을 모색한다고 했다. 
 


파산법 및 유산상속 전문 ‘S.W.Smyth LLP’의 윌리엄 스마이스(36) 변호사는 자신의 일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법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흑 또는 백’처럼 딱 떨어지지 않고,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는 ‘회색’ 성격을 갖고 있어 변호사들도 치열한 논의를 거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런 면에서 윌리엄 변호사는 자양분을 듬뿍 머금은 텃밭에서 일하는 셈이다. 그의 아버지인 앤드류 스마이스(72), 형 스티븐 스마이스(38)가 모두 변호사로, 같은 회사에서 3명이 함께 일하기 때문. 
 

‘S.W.Smyth LLP’는 1974년 아버지의 쌍둥이 형제이자 윌리엄의 삼촌인 데이빗 스마이스가 설립한 회사로, 이 집안은 윌리엄의 삼촌도 변호사, 형 스티븐의 아내도 변호사다. 윌리엄 변호사와 아버지, 형에 더해 삼촌과 형수까지, 5명이나 변호사이다 보니 추수감사절 등 가족이 다 모이는 날에는 ‘토론 내지는 달변의 기’가 분위기를 압도한다고.
 

“저와 형, 형수는 보통 조용히 있고, 아버지와 삼촌이 토론을 주도하세요. 대체로 변호사는 논쟁 벌이는 것을 좋아하거나 말이 많을 거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우리 아버지와 삼촌은 실제로 그런 편이에요. 하하. 그러나 평소 치열한 논의를 통해 진지하게 법에 대한 해석을 도출한다는 점에서 아주 좋은 환경이지요. 저와 형 또한 아버지로부터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행콕팍 지역에 있는 ‘S.W.Smyth LLP’에서 세 변호사와 윌리엄 및 스티븐의 어머니인 한인 미셸씨를 만났다. 인터뷰는 차남인 윌리엄 변호사가 했다.

 

삼부자: 가운데가 아버지 앤드류, 왼쪽이 장남 스티븐, 오른쪽이 둘째 윌리엄. 

 

5명이 변호사인 2대째 변호사 집안
 

윌리엄 변호사의 어머니인 미셸 스마이스(63)씨는 ‘S.W.Smyth LLP’의 사무장으로, 시어머니 역시 사무장을 역임했다. 온 가족이 법률과 연관돼 살아온 셈이다. 77년 미국에 온 그녀는 같은 빌딩에서 일하던 현재의 남편과 오며 가며 만나다 결혼의 연까지 닿아 세 아들을 뒀다. 
 

셋 중 두 아들을 변호사로 키운 배경에 대해 그녀는 “글쎄요. 할 게 없으니까 했겠죠. 하하. 엄마로서 제가 강요한 건 없어요.”라며 쿨하게 웃는다. 한인 어머니 특유의 교육열보다, 아버지와 삼촌이 변호사이다보니 자연스레 영향을 받았을 거라는 설명. 셋째 아들은 법 대신 MBA의 길을 택했다.

실제로 윌리엄 변호사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늘 넥타이에 정장차림으로 출퇴근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 형도 저도 자연스럽게 아버지와 같은 진로를 고려했다”고 말했다. 그는 UC어바인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뒤 로욜라 법대를 졸업했다. 그는 원래 탁월한 스포츠맨이다. 베벌리힐스 고교시절 농구와 배구로 학교 대표팀에 있으면서 2000년 ‘올해의 선수’에 뽑히기도 했다.
덕분에 잠시 스포츠 분야의 직업을 고려하기도 했으나, “평소 사회 현상 전반에 관심이 많은 데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문제를 해결해주는 법조계가 끌려” 이 길을 걷게 됐다. 대신 그는 지금도 업무 외 시간에 타이 박싱인 ‘무이 타이’를 배우며 운동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경청
 

가장 기억에 남는 고객은 그가 이 회사에 합류한 뒤 가장 먼저 만난 고객이다. 리버사이드에 사는 그 손님은 모기지를 못 내 곧 쫓겨날 위기에 처한 상태였는데, 일이 해결되자 너무나 고맙다며 윌리엄 변호사를 안아줬다고. 그 때 그 손님의 안도감이 고스란히 전해져 그는 감동과 더불어 긍지도 느꼈다.
 

변호사의 최고 덕목으로 그가 꼽는 것은 ‘경청’이다. 일단 고객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세심한 부분까지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는 것.
 

더구나 업무상 파산 직전에 닥친 손님들을 대하다보니, 그들의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안정시켜주려면 ‘굿 리스너’(good listener)가 되는 것은 필수다. 재정 위기에 처한 그들의 몸동작은 상대방과 눈을 오래 못 맞춘다든지, 손동작이 산만하다든지 하면서 그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윌리엄 변호사는 때로 10년-15년씩 거슬러올라가서 시작되는 그들의 호소를 1-2시간씩 들으며 마음을 어루만지고, 안심과 신뢰를 주려고 노력한다고.
 

또한 수많은 고객들과 상담하면서 오히려 그들의 경험과 지혜를 통해 인생을 배우는 점도, 그가 자신의 직업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다.

 

저축 못하고 카드빚 느는 현실
 

“파산법 전문은 경제가 안 좋아지면 고객이 늘어나는 관계겠다”고 기자가 짖궂게 묻자 그는 “사실상 흥미로운 관계”라며 웃는다.
 

캘리포니아의 집값이 치솟으면서 주민 5명당 1명이 저소득층에 해당한다는 통계가 나온 요즘은, 실제로 젊은 층의 크레딧카드 빚이 늘고있는 추세다. 재정기반이 아직 취약한 젊은이들이 렌트와 모기지 등 집값을 감당하기 어려워 생활비를 카드에 의존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비 청구를 크게 당해도 빚은 순식간에 는다. “1만-1만5천 달러, 많게는 10만-15만 달러씩 카드 빚을 진 손님들도 있습니다. 특히 40대 이상의 집 소유주들이 갑자기 직업을 잃거나, 가족 중 상을 당해 장례를 치르거나, 집수리를 크게 했을 경우, 모기지를 내지 못해 찾아오는 경우도 꽤 있고요. 안타깝게도 그만큼 요즘 많은 사람들이 평소 저축을 못한 채 빡빡하게 산다는 반증이지요.”

그가 기억하는 최악의 상황은 서브 프라임 사태가 터진 2010년. 그는 “평소엔 파산 공청회가 주1-2회 열리고 20-30명 정도 참석하는데, 당시엔 주 3-4회씩 열리면서도 100여명이 발디딜틈 없이 들어차곤 했다”며 칼바람이 닥쳐 뒤숭숭했던 당시의 분위기를 회고했다.

 

한인 커뮤니티에 꼭 필요한 회사로
 

그는 2대째 운영돼오는 변호사 사무실을 아버지와 형과 함께 꾸준히 키워갈 계획이다.
 

파산에 대해 그는 “재정상태가 최악으로 치닫기 전 또는 후에 파산법이라는 합법적인 망을 통해 회생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산은 어려운 것, 나쁜 것이라는 선입견이 일반인들에게 있지만, 암담한 상황에서 길을 찾도록 모색해주는 것이 그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많은 한인분들이 스몰 비즈니스를 운영하는데, 사업이 잘 안 될 경우 너무 늦어지기 전에 미리 계획을 세우면 가족을 보호할 수도, 사업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저희 회사가 미드윌셔에서 40여년간 있어온 만큼, 한인 커뮤니티에 꼭 필요한 회사로 이끌어나갈 생각입니다.” 

 

‘S.W.Smyth LLP’ 전화 : (323)933-8401 

주소 : 4929 Wilshire Blvd. #690 

글 : 김수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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