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유홍준 (지은이) | 창비

한국 인문서를 대표하는 독보적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의 저자 유홍준 교수가 방대한 자료와 오랜 연구를 바탕으로 추사 김정희의 삶과 예술을 담은 <추사 김정희: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를 펴냈다. 추사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쏟아지고, 그의 작품들이 줄줄이 보물로 지정되며 끊임없이 재평가되고 있는 와중에도 여전히 단편적인 수준에서 논의되는 추사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을 역작이다.

추사 김정희는 조선시대 서화 연구자로서 유홍준이 오랫동안 넘고자 했던 산이었다. 1988년 성균관대 박사과정에 입학하면서 추사 김정희론을 연구 주제로 삼은 그는 2002년 그간의 연구 성과를 모아 <완당평전>(전3권)을 펴냈고, 그 후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추사를 주제로 강의하며 대중에게 추사 김정희의 학문과 예술을 전파해왔다.

<완당평전>이 출간되면서 추사에 대한 관심이 커졌지만, 유홍준 교수는 학계에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고문헌 연구가인 박철상 박사는 <완당평전>을 분석한 결과 오류 200여 개가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비판에 유홍준 교수는 <완당평전>을 절판하고, 2006년 분량을 3분의 1 정도로 줄인 전기 <김정희>를 새롭게 내놨다. 하지만 이 책도 수명이 길지 않았다. 추사와 관련된 다양한 사료가 끊임없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신간 <추사 김정희>는 유홍준 교수가 12년 만에 선보이는 <김정희> 개정판이라 할 만하다.

추사의 생애를 총 10개의 장으로 나누어 설명하며, 탄생부터 만년까지 주인공의 일대기를 좇는 전기 형식으로 구성된 이 책은 그간 파편적으로 이해되어온 추사의 삶과 예술, 그리고 학문을 총체적으로 그려낸다.

대갓집 귀공자로 태어나 동아시아 전체에 ‘완당바람’을 일으키며 승승장구하던 추사가 두 차례의 유배와 아내의 죽음 등을 겪고 인간적. 예술적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이 역사소설처럼 흥미롭게 펼쳐지는 한편, 그 속에 녹아든 추사 학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는 여느 학술서 못지않게 탄탄하다. 저자의 말마따나 ‘전공자가 읽으면 학술이 되고 일반 독자가 읽으면 문학이 되는’ 잘 쓰인 교양서다.

추사는 단순히 유명한 서예가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서예뿐만 아니라 경학, 금석학, 고증학, 시문, 다도, 미술품 감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를 무대로 활약한 국제적인 학예인이었다. 학문 면에서 추사는 당시 학문의 신사조이던 청나라의 고증학과 금석학을 들여와 조선의 현실에 적용했고, 치열한 자기화. 토착화 작업을 통해 조선에서 이룩한 성과를 다시 연경에 전함으로써 조선과 중국 학계를 아우르는 최고의 지성으로 평가받았다.

당대 시인 신서희는 “추사는 본디 시와 문장의 대가였으나 글씨를 잘 쓴다는 명성을 천하에 떨치게 됨으로써 그것이 가려지게 되었다”고 평했고, 차 분야에서는 다산, 초의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다성으로 꼽히고, 고증학과 금석학에 조예가 깊어 일본 학자가 “청조학 연구의 제일인자는 추사 김정희”라고 결론을 내릴 정도이니, 그의 활약상을 일일이 적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추사는 만년에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사자는 코끼리와 싸울 때도 온 힘을 다하지만 토끼를 잡을 때도 온 힘을 다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추사를 타고난 천재라고 말하곤 하지만 추사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추사는 벗 권돈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 글씨는 아직 부족함이 많지만, 저는 70 평생에 벼루 열 개를 밑창 냈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 붓으로 만들었습니다.” 실로 자랑스러운 고백이다. 추사는 이처럼 무서운 장인적 수련과 연찬을 거쳤다

책에 실린 280여 점의 도판은 이 책의 또 다른 강점이다. <세한도> <불이선란> 등 기존의 대표작뿐 아니라 <침계> <대팽고회> <차호호공> 등 최근 보물 지정이 예고된 작품들과 그 제작 경위까지 상세히 실려 있어 도판만 따라 읽어도 추사 예술세계의 진면목을 제대로 느낄 수 있고, 추사체의 변천을 비롯한 추사 예술의 흐름까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송명국, 알라딘 로데오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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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송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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