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 로펌’ 진 권 변호사

54년 인생에 43년 일…

변호사 꿈 이룬 미싱 소녀

On July 20, 2018


표어‘세상에 이로운 존재가 되라.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라.’


 

인생을 이토록 고단하게 살 수 있을까.

10대 소녀는 걷지 못했다. 딱히 병명은 없고, 하루 12시간씩 아르헨티나에 있는 부모님의 봉제공장에서 ‘미싱질’을 했기 때문이었다. 의사는 소녀의 부모에게 “당신 딸은 미싱을 그만둬야 걸을 수 있다”고 했다.

 

11세부터 17세까지 주 7일 내내, 미싱 페달을 하루 수천번씩 밟았던 소녀는 그제서야 미싱에서 해방됐다. 대신 중국 여행사에 취직해 티케팅을 했다.

54년을 살아오면서 죽기살기로 일한 기간이 무려 43년. 하루 12-15시간씩 일하고, 그러면서 주경야독으로 공부를 병행해온 삶이다.

 

열한 살부터 고교 때까지 그 또래가 누릴 법한 평범한 소녀시절, 학창시절을 그녀는 알지 못한다. 초등학교는 일주일에 1-2일 갔고, 중고등학교는 일을 마친 저녁, 한시간반씩 버스를 타고 야간과정으로 다녔으니까.

밤 12시 전에 귀가하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피곤에 절어 버스에서 졸다가 종점까지 가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다섯번이나 강도를 당했지만 아버지에게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공부는 해서 뭐하냐. 일해서 돈이나 벌어라”던 아버지. 강도 만난 걸 알면 “당장 학교 때려치우라”고 할 게 뻔했다.

‘연세 로펌’ 진 권(54) 변호사와의 인터뷰에서 들은 이야기는 귀를 의심할 만큼 처절했다. 덤덤히 말하던 그녀는 끝내 눈시울이 붉어졌고, 인터뷰 말미엔 “나를 만나는 사람은 다 잘되면 좋겠다”고 했다.

 

더 이상 고달플 수 없었을 사람이 전하는 축복이라…그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뭔지 모를 울컥함과 헛헛함이 맴돌았다.

 

미싱을 그만둬야 걸을 수 있다

64년생인 진 권 소송 전문 변호사는 올해 54세다.

 

오렌지카운티 한인회, 미주 한인상조회, 가주한미 식품상협회(KAGRO) 등 여러 한인 단체의 고문 변호사를 맡고 있다. 또 7년째 연중 1-2회 정기세미나를 통해 노동법, 장애인 공익소송, 미성년자 주류판매, 유산상속법 등 한인들이 궁금해하는 법률들도 알려주는, 커뮤니티 봉사활동이 활발한 변호사다.

그녀의 이력은 특이하다. 11세 되던 해 아르헨티아의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가족이민을 가면서 그녀의 인생은 송두리째 달라졌다.

이민 생업으로 봉제업을 시작한 부모님의 공장에서, 3남매중 맏딸인 그녀는 하루 10-12시간씩 주 7일 일했다. 한국서 6학년이던 그녀는 언어장벽 때문에 아르헨티나에선 3학년으로 편입했는데, 미싱일을 하느라 주중 1-2일만 학교에 나갔다. 공장과 집을 쳇바퀴 돌 듯 오갔고 일요일 오전엔 교회에 갔다. 이게 그녀 생활의 전부였다

 

어린 나이에 너무 오랜 시간 앉아서 일해, 서서 제대로 걷지 못하는 지경이 됐다. 의사는 그녀의 부모에게 “당신 딸이 걸으려면 미싱을 그만둬야한다”고 했다. 그 때가 17세. 그녀는 그제서야 미싱에서 벗어났다.


 

학대 딛고 한국행, 고학으로 대학 졸업
믿기 어려운 이야기에 기자가 “이 정도면 학대다. 친부인가” 물었다.

 

“친아버지에요. 지금 보면 학대죠. 소녀시절을 상실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당시 너무 어렸고, 이민 생활이 다 이런 줄 알았어요. 실제로 많은 남미 이민자들이 힘들게 살기도 했고요. 그래서 당시엔 부모님을 원망할 줄도 몰랐습니다.”

17세부터 여행사에서 일하며 야간고교를 마친 그녀는, 86년 한국으로 가 한국 외국어대 스페인어과 87학번으로 입학했다. 고교에서 만난 남자친구로부터 그녀가 한국어도 제대로 못한다고 핀잔을 들어, 한국어를 배우고 싶단 열망이 커졌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그녀의 한국행을 찬성할 리 없었다. 당시 외대의 한학기 학비만 1,000달러였는데, 그녀는 4년 대학시절 내내 부모님한테선 500달러 받은 게 전부였다. 부모님이 준 500달러와 가방 하나 달랑 들고 한국에 도착한 그녀는 방송통신대학의 외국인 기숙사로 들어갔다.
 
학비와 생활비를 전부 홀로 해결해야했기에, 성적장학금을 놓치지 않는 것은 물론 여전히 주경야독 해야했다. 낮에 아르헨티나 대사관에서 일하고 틈틈이 통역 아르바이트, 스페인어로 과제물 써주는 일 등도 하면서 4년 내내 고학했다.

90년 2월 졸업한 그녀는 미국으로 건너왔다. 부모님과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 와, 새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졸업식에 입을 옷 한 벌이 제대로 없더라고요. 남이 준 푸른색 스웨터를 입고 어찌어찌해서 미리 졸업사진은 찍고, 졸업식은 참석 못하고 미국으로 왔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애증, 법학 공부로 길 찾아

미국 와서 페인팅과 바디샵 일을 하던 아버지는 94년, 베이비시터 일을 하던 엄마는 2년 반 전 세상을 떠났다.

 

열한 살때야 너무 어려서 그랬다 쳐도, 커서도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정말 없었을까. “학교 가서 뭐하냐. 먹고 살기 힘든데 공부 집어치우고 일해라”라고 했던 아버지를 말이다.

“엄마한텐 안 그런데, 아버지에겐 애증이 있어요. 신을 원망하기도 했고요. 아버지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한 건 10년이 채 안 됐어요. 빼앗긴 나의 학창시절을 보상하고 싶어서, 40대 들어 ‘난 이제 하고싶은 것 하고 살겠다’고 결심했지요. 미국 와서 보니 사업하다가 법을 몰라서 사기 당하거나 망한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법학을 공부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99년 ‘라 번(La Verne) 대학교’ 법대 대학원에 입학, 변호사 사무실과 무역회사 등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학업을 마쳤다. 변호사 시험을 3일간 치는데, 이를 위해 딱 일주일간 일을 쉬고 공부에 전념했다고. 이 7일이 그녀가 11세 이후 유일하게, 작심하고 일을 하지 않은 기간이었다.

 

그녀에게 달콤한 잠, 편안한 쉼은 정녕 사치였을까?

2008년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진 권 로펌’을 차린 그녀는 소송 전문 변호사로서 주중 15시간, 주말 평균 8시간씩 일했다. 새벽 2시에 귀가하고 오전 7시에 일어나 법원으로 향하느라, 많이 자야 4시간 정도인 생활이었다.

 

2018년 ‘연세 로펌’ 소속이 된 그녀는 IRS 세금 삭감, 세금 탈세 소송, 저작권 소송, 학교 교육법 관련 소송 등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다 잘 되면 좋겠어요”

 

54년 살아오면서 43년간 일한 사람. 평생 고학하느라 단 한번도 결혼이라곤 안 한 그녀다. 이제야 약혼자를 만났다고 했다.

결코 범상치 않게 걸어온 삶, 혹시 후회되는 것이 있을까.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은 무얼까.

 

“엄마와 시간 많이 못 가진 것이 후회돼요. 너무 일만 하고 사느라 같이 밥 먹고 놀러가는, 소소한 추억을 못 쌓았거든요. 계획이라면 변호사 실력을 착실히 쌓고 사회봉사 열심히 하다가 60대 중반쯤 연방 판사가 되는 것입니다. 더불어, 저를 만나는 사람들은 그저 다 잘 되면 좋겠어요.”

 

한 세상 사는 동안 축복을 남기고 싶다는 그녀다. 지난한 생을 걸어온 그녀가 앞으로 꽃길만 걷기를.

 

 ‘연세 로펌’ 전화 : (213)480-0348

주소 : 3700 Wilshire Blvd. #430 L.A.

글 : 김수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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