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포의 장사법

그들은 어떻게 세월을 이기고 살아 있는 전설이 되었나

박찬일(저자) | 노중훈(사진) | 인플루엔셜(주)

노포(老鋪)는 대를 이어 수십 년간 특유의 맛과 인심으로 고객에게 사랑받아온 가게를 일컫는다. 2017년 서울시는 오래된 가게들의 가치를 헤아리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39곳의 노포를 ‘오래가게’라는 이름으로 지정한 바 있다. 바야흐로 ‘노포의 시대’라 할 만하다.

대한민국 상위 3만 개 기업의 평균 수명이 고작 16.9년에 불과하다는 조사가 있었다. 이에 비해 이 책에 소개된 노포 26곳의 평균 업력은 약 54년을 넘는다. 자산 규모의 힘으로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노포의 저력은 무엇일까? 무엇이 그들을 전설로 만들었을까?

‘글 쓰는 셰프’로 유명한 박찬일이 한 길만 걸어온 사람들, 그중에서도 서민의 뼈와 살이 되어준 한국의 요식업 1세대 산증인들을 만났다. 저자는 3년간 발로 뛴 취재를 통해 오래 살아남은 식당들의 성공 비결, 그 위대한 장사 내공을 기세(幾歲), 일품(一品), 지속(持續)의 세 가지로 정리해 설명한다.

첫 번째는 ‘기세’다. 평균 업력 50년 이상의 노포 식당의 창업주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의 면모다. 1939년에 창업한 서울 하동관은 지금도 점심시간마다 직장인들이 줄을 서지만, 하루 단 500그릇만 팔고 문을 닫는다는 원칙을 어긴 적이 없다. 최고의 재료를 쓰되, 너무도 간결한 맛이라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다는 하동관 곰탕의 맛은 그런 기세를 바탕으로 유지된다.

눈앞의 이익에 흔들리지 않는 장사꾼의 배포는 서울 팔판정육점에서 찾을 수 있다. 1940년 창업해 3대를 이어오는 이곳은 어느 재벌기업에서 80억에 팔라는 제안에 거절한 이야기나, 창업주가 아들인 2대 사장에게 가게를 대물림할 때도 값을 매겨 ‘팔았다’는 에피소드에서 진짜 장사꾼다운 배포가 무엇인지를 직선적으로 만나게 된다.

두 번째는 ‘일품’이다. 최고의 맛을 위해 고된 노동을 포기하지 않은 노포들이 대다수이다. 화교 출신으로 타국에서 60년 넘게 산둥식 만두를 빚어온 부산의 신발원이나 인천의 신일반점은 오직 손맛으로 일가를 이룬 집념의 장사꾼들이다. 최상의 맛을 선보이겠다는 집념에 더해, 무엇보다 ‘밥장사는 누군가의 배를 불리는 일’이라는 사명을 잊지 않는 푸근한 인심이 또 다른 비결이다. 대전역 앞을 60년째 지켜온 신도칼국수는 무엇보다 ‘푸짐한 양’ 때문에 유명해졌다. 2인분짜리 주문에 ‘바께쓰’ 가득 퍼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세 번째는 ‘지속’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고통스러운 근현대사를 맞은 탓에, 우리에겐 백년 노포가 거의 없다. 지금 노포가 새롭게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무엇보다도 대를 이어 수십 년간 업을 지속해 온 위대함을, 그 가치를 이 시대가 재발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때 인천의 대전집은 인천 구시가의 전설적인 상징이었다. 그러나 속칭 신포동 골목의 몰락과 함께 이제는 잊혀져가는 추억의 노포가 되었다. 허나 끝은 아니다. “제발 가게가 없어지지만 않게 해달라는 부탁을 하십니다, 손님들이. 그런 말씀을 들으니 작은 사명감이 생겨요. 잘 해야지요.”라고 말하는 2대 사장의 각오가 창업 47년을 맞이하는 이 노포의 존재가치를 말해준다.

서울 을지로 야장의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을지오비베어는 생맥주와 노가리 안주 맛으로도 유명하지만, 무엇보다 구순(九旬)이 다 되도록 매일 아침 10시에 문을 열어 가게 앞을 쓸고 직접 ‘디스펜서(생맥주를 공급하는 손잡이 장치)’를 잡고 ‘생활의 달인’처럼 정확하게 맥주를 따른 창업주 때문에도 꼭 한번 가봐야 할 노포이다.

음식평론가 황교익은 “노포를 고포(古鋪)라고 하지 않는 것은 사람처럼 함께 늙어갔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 책을 먼저 읽고 “이 가게들이 더 오래가기를, 더 늙어가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추천사를 남긴 박원순 서울시장처럼, 저자 박찬일 역시 이 노포들의 지속을 가장 간절하게 바란다. 한국의 노포는 대를 거듭해 우리에게 남은 가장 소중한 문화유산인 동시에, 우직하지만 담대한 내공이 번뜩이는 장사법의 보고(寶庫)이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노포의 위대한 장사 비결을 배우고 싶다면 이 책 <노포의 장사법>이 좋은 교과서가 될 것이다.

 

송명국, 알라딘 로데오 서점

(213)380-8885
Email: rodeobooks@gmail.com


글 : 송명국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