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시즌과 겹치는 포도 수확기
강제단전 당한 와이너리들 어떻게…

얼마 전 집에 있는 와인 셀라 중의 하나가 작동을 멈췄다. 부랴부랴 중요한 와인들을 골라내 다른 셀라로 옮기고 덜 중요한 것들은 빼서 박스에 옮겨 담아 옷장 안쪽에 넣어두었다. 그동안 여러 종류의 가정용 와인냉장고를 써봤지만 대부분 수명이 10년을 넘기지 못한다. 갑자기 고장이 나면 마음이 급해서 작은 걸 자꾸 사들이니 숫자만 늘어나게 되었다. 이번엔 좀 크고 튼튼한 걸로 장만하려고 제조사에 직접 오더를 했는데 운송에만 3주나 걸린다고 한다. 꼼짝없이 날씨가 너무 더워지지 않기만을 바라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지난 번 산불에 강제단전을 당한 사람들을 생각했다. 9월말부터 10월초까지 북가주와 남가주의 수많은 가정이 며칠 동안 전력 공급이 끊긴 채로 살아야 했다. 그 불편이 얼마나 심했을지 짐작하기 어려운데, 그 중에서도 와인 셀라가 있는 집은 위기를 어떻게 넘겼는지 궁금하다. 집에 수천병이 들어가는 와인 셀라를 지어놓은 전문적인 와인애호가들은(지난번에 소개한 수 초이와 짐 데이비스처럼) 대부분 정전을 대비해 발전기(generator)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우리 같은 보통 와인애호가들은 몇병 되지는 않아도 오랜 세월 소중하게 모아온 금쪽같은 와인을 어찌할 것인가.
 

그런데 전기가 끊겼을 때 이런 걱정과는 비교도 안 되는 위기에 봉착하는 것이 와이너리들이다. 연례행사처럼 되어버린 산불 시즌은 포도 수확기와 겹친다. 9월말에서 10월까지는 와이너리가 일년 중 가장 바쁜 계절이다. 연중 방문객도 가장 많고, 와이너리 뒤켠에서는 사람들과 트럭들과 기계들이 풀가동되어 북적인다. 
 

포도밭에서는 일꾼들이 수확한 포도가 바삐 트럭으로 옮겨지고, 트럭에 가득 실린 포도송이들은 와이너리로 들어서는 즉시 양조시설로 옮겨져 가지제거(destemming)와 정리(sorting), 파쇄(crushing)를 거쳐 발효(fermentation)와 펌프가 시작된다. 따라서 이 시기에 강제단전이 실시되면 와이너리로서는 치명적 손실을 입게 되는 것이다. 모든 과정은 기계화돼있기 때문에 전기가 없으면 작동을 할 수가 없고, 특별히 발효는 온도 조절이 굉장히 민감하기 때문에 정전이 되면 와인을 망칠 우려까지 대두된다.
 

북가주 와인산지는 이런 비상사태를 2017년 소노마 산타로사 대형화재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겪었는데 여기에 대처하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발전기를 마련해 스스로 전기를 돌리던가, 아니면 전력 공급이 재개될 때까지 수확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다 쉬운 일이 아니다. 
 

제너레이터는 사는 것이나 대여하는 것이나 워낙 비싸고, 그나마 산불 시즌에는 수요가 폭증해 빨리 선점하지 않으면 빌릴 수도 없다. 전력이 30킬로와트(혹은 50마력)가 넘는 발전기는 반드시 지역 공기정화국에서 퍼밋을 받아야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가격은 작은 것이 6,000달러에서부터 100킬로와트 짜리는 무려 4만달러나 한다고 한다.
 

한편 수확을 늦추면 그만큼 포도가 더 익어버리게 된다. 포도재배에서 와인양조로 넘어가는 가장 중요한 순간은 언제 수확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이다. 당도와 산도와 과일 맛이 가장 완벽하게 들었을 때를 기다려 새벽 동트기 전에 수확해야 최상의 와인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포도가 나무에서 며칠 더 익게 되면 그 맛을 보장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와인 맛의 성패가 달린 시기에 찾아오는 산불과 강제단전이 앞으로 연례화된다면 나파 밸리와 소노마의 와인산업은 크나큰 타격을 입을 것이 틀림없다.

글 :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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