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펀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44)는 비록 콧수염을 하고 턱에 수염을 기르긴 했지만 아직도 앳된 티가 나 보였다. 머리를 올백으로 넘기고 단정한 자세로 인터뷰에 임한 그는 오스카상을 탄 베테런이면서도 수줍어하는 표정을 감추려고 애쓰는 듯이 창밖을 바라보면서 질문에 대답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9번째 영화 ‘원스 어펀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1969년 변화하는 할리우드에서 시들어가는 자신의 인기를 지키려고 애쓰는 TV 웨스턴 스타 릭 달턴으로 나오는 레오와의 인터뷰가 최근 베벌리힐즈의 포시즌스호텔에서 있었다. 영화에서 릭의 대역 클립 부스로는 브래드 핏이 나온다. 앙상블 캐스트의 영화는 릭과 클립의 오랜 관계와 함께 1969년 광적인 살인가족 ‘맨슨 일가’ 의해 살해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배우 아내 샤론 테이트(마고 로비)의 얘기를 중심 플롯으로 삼고 있다. 이 영화는 타란티노가 옛 할리웃에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     


배우로서 당신의 생애와 릭과의 삶에서 어떤 유사점이라도 찾아 볼 수 있는가.

내 생애는 릭과는 궤적을 달리하지만 난 즉각적으로 그와 연결이 되었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자란 내가 아는 그 누군가와  본질적으로 매우 닮았다. 릭은 할리우드의 문화와 산업이 자기를 추월해 갔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다. 영화를 찍으면서 나는 쿠엔틴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훌륭한 영화사학자일 뿐 아니라 영화광이요 또 내가 전연 알지 못했던 B급영화와 TV작품에 대해서도 통달한 사람이다. 쿠엔틴에 의해 내가 몰랐던 과거의 훌륭한 배우들로부터 큰 영감을 받았다. 이런 맥락에서 쿠엔틴과 나는 릭 달턴이란 과연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 함께 여정을 나눈 셈이다. 왜냐하면 릭은 자기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고 있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비록 할리우드 산업이 릭을 추월하고 있지만 그가 자신에 대해 동정하기를 멈추고 아울러 언제나 컴백할 기회는 있다는 것을 깨닫는 배우로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브래드 핏과 공연한 경험은 어땠는지.

우린 영화와 LA 그리고 우리가 성장한 1990년대에 대해 같은 이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의 배우로서의 생애도 거의 같은 시기에 꽃피기 시작했다. 옛날에 배우와 그의 대역은 단순히 직업적인 것을 떠나 한 가족과도 같은 것이었다. 둘은 이런 관계에 의존하며 지냈다. 쿠엔틴이 우리에게 이런 관계를 지녔던 배우와 대역의 영화를 많이 소개해 우린 첫 날 세트에 오르자마자 단번에 역에 익숙할 수가 있었다. 참 이상한 느낌이었다. 브래드와의 경험은 아주 멋있는 것이었다. 그는 재주가 뛰어날 뿐 아니라 남이 생각 못하는 것을 선택하며 아울러 창조적으로 흥미 있고 매력적인 감독과 일하려는 사람이다.

할리웃 하면 대뜸 생각나는 것이 무엇인가.

많기도 하다. 그것은 내 존재 전체다. 난 할리웃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영화의 1969년대는 히피시대로 그 문화가 내가 자란 1980년대 까지 전승되었다고 본다. 내가 배우가 된 유일한 까닭은 내가 할리웃에 살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배우가 되려고 꿈을 꾸긴 했지만 배우 클럽에 속했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 그 것은 늘 이상하게 내겐 무형의 존재처럼 느껴졌다. 할리웃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어머니가 날 방과 후 오디션에 차로 데려다주지 않았더라면 난 결코 배우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배우가 먼저고 결혼은 나중인가.

그에 대해선 배우로선 성공하기란 복권에 당첨되는 것과 확률이 비슷하다는 것으로 대답하겠다. 물론 재능도 중요하지만 배우로서의 길에 제대로 들어서려면 바른 시기에 바른 장소에 있어야 한다. 따라서 난 이렇게 찾은 기회를 망쳐놓지 않으려고 분주히 노력하고 있다.
 

당신은 환경 보호자로서 이를 지키기 위해 많은 투자도 하는데 투자하기 전에 사전에 얼마나 그에 대해 연구 하는가.

난 숫자에 대해 무지해 그에 대해선 사람을 고용한다. 난 환경보호와 자선사업 등을 하고 있는데 배우 노릇을 하면서 계산하는 일까지 내가 할 수는 없다. 나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재정적 안정은 어느 정도 예술적 자유를 보장해 준다. 따라서 난 낭비나 지나친 소비를 하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난 삶에 있어 아주 단순한 일들에 대해 신경을 쓰면서 그 것들을 잘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것이 연기든지 철학이든지 또는 내 개인적 관계이든지 난 그런 것들을 단순하게 다루고 있다. 삶을 너무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영화에서 릭은 자기 연기에 실망해 트레일러에 돌아와서 기물을 마구 파괴하는데 본인도 그래본 적이 있는지.

배우치고 그러지 않은 사람이 없으리라고 본다. 지쳐서 그럴 때도 있고 때론 대사를 외우지 못해 그럴 때도 있다. 나도 대사를 제대로 외우지 못해 애를 먹은 적이 더러 있다. 그럴 때면 마치 속옷 바람으로 등교하는 느낌이 든다. 연기란 카메라와 제작진을 잊어버리고 순간에 몰입하는 것인데 돌연 모두가 날 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말문이 막힐 때가 있다. 영화에서 내가 대사를 더듬는 장면을 위해 내 경험을 어느 정도 이용했다. 그런데 그 장면은 각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쿠엔틴이 즉흥적으로 만든 것이다.
 

환경보호와 자선을 위한 당신의 재단은 설립 된지 20년이 되는데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은 무엇인가.

브라질을 비롯한 여러 곳의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위해 한 일이다. 브라질은 지금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마구 유린하고 있다. 그들이 사는 아마존 밀림을 파괴하는 것은 지구의 폐를 파괴하는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지구의 마지막 폐를 지키면서 사는 원주민들을 보호해야 한다. 우리 재단은 그동안 200여개의 풀뿌리 단체를 지원했다. 그 액수는 밝히지 않겠다.
 

당신은 영화의 시대인 1969년 보다 5년 후에 태어났는데 자라면서 그 시대에 대해 어떤 점들을 알고 또 어떻게 느꼈는가.

그 땐 히피시대로 내 부모는 그 때나 지금이나 히피들이다. 쿠엔틴은 그 때를 재현하려고 할리우드 거리 다섯 블록을 옛날처럼 재단장 했다. 브래드와 내가 차를 타고 그 거리를 지나가다가 내가 브래드에게 ‘저기 걸어가는 히피가 내 아버지’라고 말했더니 브래드가 ‘거 참 멋 있네’라고 대꾸하더라. 그래서 난 ‘아니 진짜로 내 아버지’라고 알려줬다. 내 부모는 지금도 히피복장을 하고 있다. 난 비록 그 때에 자라진 않았지만 연계를 느끼고 있다. 왜냐하면 ‘맨슨 일가’의 살인행위가 히피와 평화혁명의 꿈의 종말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가 그것이 꿈의 종말이었다고 내게 말했다. 그 시대에 대해 난 부모로부터 많은 것을 들었다.
 

릭은 TV 웨스턴 시리즈에 나오다가 영화에서 성공해보려고 이탈리아에 가 스파게티 웨스턴을 찍는데 그 경우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것과 유사하다. 클린트를 만나 이에 대해 대화라도 나눴는지. 

아니다. 릭의 역과 생애는 클린트 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것을 참고로 한 것이다. 그런데 릭은 다소 자기만족에 빠진 사람으로 이탈리아에 가서 미국의 전유물인 서부영화를 찍는다는 것을 창피하게 여긴다. 그는 그 당시 많은 훌륭한 배우와 감독들이 이탈리아에서 성공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릭은 자기 처지를 완전히 돈 때문에 팔려간 신부처럼 생각한다. 좌우간 클린트와 그에 대해 상의하지 않았다.
 

브래드 핏과의 관계에 대해 좀 더 얘기해 달라. 영화를 찍고 나서 과거보다 훨씬 더 가까워지기라도 했는지. 

그는 훌륭한 사람으로 철저히 직업적이며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다. 함께 일하기가 아주 편한 사람이다. 그와의 옛 인연이랄 것은 우리 둘 다 무명시절 TV쇼 ‘그로잉 페인즈’에 나왔다는 사실이다. 그는 1980년대 말에 난 1990년대 초에. 그 것이 우리 관계의 전부다.
 

요즘 많은 여자들이 환경변화로 인해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하고 있는데 그에 대한 의견은 어떻고 당신은 아이를 날 계획이라도 있는지.

그런 결정은 각자에게 달린 것이다. 좌우간 우린 무서운 미래를 맞게 됐다. 내가 아이를 날지 않을지에 대해선 낳게 되면 낳는 것이라고만 말하겠다.
 

명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명성이란 무상하게 흘러가는 것이다. 난 어렸을 때부터 배우로서의 성공한 생애를 장거리경주로 생각했다. 보조를 잘 맞춰야 한다. 배우로서의 삶이란 굴곡이 있게 마련으로 슬럼프에 빠졌을지라도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의도와 함께 슬럼프에서 헤쳐 나와야 한다. 배우란 항상 자신에 대해 의문을 품게 마련이다. 우린 유한한 생명체임을 깨달아야 한다.  

글 : 박흥진<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다른 기사 보기